장인의 하루는 버려진 것들로 시작되는 멜로디
버려진 물건에서 소리가 날 수 있을까? 폐플라스틱, 부서진 가구 조각, 고장 난 전자부품. 사람들은 쓸모없다고 여긴 것들을 한 남자는 ‘소리의 재료’로 다시 만들어낸다. 그가 고치는 건 단순히 물건이 아니라, 사람들의 귀와 감성이다.
서울 은평구의 한 반지하 창고. 65세 윤형석(가명) 씨는 이곳에서 매일 아침 소리를 만들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그의 작업실은 악기점이라기보다 ‘재활용 센터’에 가까운 풍경을 하고 있다. 벽에는 못 쓰게 된 기타 넥, 폐목재로 만든 북, 페트병으로 만든 셰이커가 줄지어 걸려 있다. 그는 “악기란 건 고급 재료보다 마음이 먼저 울려야 해요”라고 말한다. 이곳에서 울리는 소리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멜로디다.
장인의 하루는 소리보다 마음이 먼저 울리는 작업
윤 씨가 폐자재 악기를 만들기 시작한 건 우연이었다. 예전엔 목공 기술자였던 그는 은퇴 후 시간이 남아 집에 있던 고장 난 기타를 분해해 봤다. 그 안에서 깨달은 건 “악기는 구조보다 울림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이후 그는 폐자재를 모아 실험하듯 악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폐가구의 서랍장은 핸드드럼이 되고, 낡은 우산살은 실로폰의 건반이 된다. 그는 소리가 날 만한 구조와 재료를 귀로 찾아낸다. “음계가 아니라 느낌이에요. 듣는 사람의 표정이 가장 정확한 튜너입니다.” 최근엔 지역 청소년들과 함께 악기 워크숍도 운영 중인데, 아이들은 그와 함께 페트병 드럼이나 철제통기타를 만들며 ‘소리의 마법’을 배운다.
음계가 아닌 감정을 조율하는 장인의 하루
그는 정통 음악 교육을 받은 사람은 아니지만, 소리에 대한 감각은 남다르다. 사람마다 다른 리듬을 가지고 있다고 믿으며, 악기를 만들기 전에는 꼭 의뢰자의 목소리를 듣는다. “목소리에 따라 재료도 다르게 선택해요. 쉰 소리가 나는 사람에겐 따뜻한 소리의 악기를, 날카로운 사람에겐 부드러운 울림을 줄 수 있는 구조로 설계하죠.”
기억에 남는 고객 중에는 소리를 잃은 할머니가 있었다. 청력을 잃었지만 손끝의 진동은 느낄 수 있다는 그녀에게 그는 버려진 나무상자로 북을 만들어주었다. 북의 표면을 특수 고무로 감싸, 두드릴 때 미세한 떨림이 손에 전달되게 했다. 그 할머니는 그 북을 두드리며 말했다. “나는 다시 음악을 느껴요.” 윤 씨는 그날 처음으로 자신이 ‘장인’이라는 걸 받아들였다.
버려진 것을 다시 울리게 만드는 사람인 장인의 하루
지금도 그는 매주 지역 재활용장과 중고센터를 돌며 재료를 모은다. “비싸고 고급스러운 재료는 관심 없어요. 중요한 건 새 생명을 줄 수 있는가 죠.” 그는 오늘도 낡은 찬장 문짝을 떼어내어 기타의 바디를 만들고, 벽걸이 선풍기 부품으로 타악기를 조립한다.
윤 씨는 말한다. “악기는 결국 사람의 마음이 담겨야 울려요. 그게 없으면 아무리 좋은 악기도 의미 없죠.” 그의 악기는 무대 위에 서지 않지만, 동네 골목과 교실, 병원과 공방에서 사람들과 함께 울린다. 폐자재로 만든 악기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누군가에게는 위로이고, 누군가에겐 재시작의 리듬이다.
서울의 작은 골목, 자전거 수리를 넘어 사람의 마음까지 고치는 장인이 있다. 그의 손끝에서 고쳐진 것은 기계가 아니라, 재출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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