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감정을 엮는 사람인 장인의 하루
실 한 가닥은 작고 연약해 보이지만, 그 실이 이어지고 엮이면 생각보다 단단한 무언가가 된다. 어떤 이는 실로 옷을 짜고, 어떤 이는 감정을 짠다. 서울 마포구 조용한 주택가 골목 안, 햇살이 드는 작은 창문 아래에서 매일같이 뜨개질을 이어가는 사람이 있다. 바로 66세 박선희(가명) 씨. 그녀는 30년 넘게 실로 그림을 그리고, 사람의 기억을 옷처럼 엮어내는 뜨개질 장인이다.
박 장인은 자신을 ‘디자이너’나 ‘예술가’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녀는 다만 “실로 위로를 건네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녀가 짜는 것은 단지 니트 모자나 스웨터가 아니다. 그녀는 떠나간 사람을 위한 담요를 짜고,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인형을 복원하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실에 담는다. “누군가의 마음을 짠다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되는 작업이에요.”
뜨개질은 장인의 하루의 시간으로 완성되는 감정의 기술
박 장인의 하루는 정리부터 시작된다. 실의 촉감, 색감, 굵기를 손끝으로 느끼고, 그날의 기분에 따라 바늘을 고른다. 대부분의 작업은 주문제작으로 진행되며, 사람마다 원하는 패턴과 색이 다르다. 그녀는 “실은 사람의 감정을 닮아서, 손이 기분을 따라가게 되어 있어요”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아이를 잃은 엄마가 부탁한 아기 담요는 순면으로 정직하게, 복잡한 패턴 없이 짰다. “그분은 격식을 원하지 않았어요. 그저 그 아이와 함께한 기억을 담고 싶다고 했어요.” 박 장인은 뜨개질을 하며 기도하듯 실을 넘기고, 한 코 한 코에 위로의 마음을 담는다. 그 담요를 건넸을 때, 그녀는 말없이 두 손을 모았고, 의뢰인은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뜨개질을 ‘마음의 속도로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절대 작업을 서두르지 않는다. “속도를 내면 코가 엇나가고, 틈이 벌어져요. 마음도 그래요. 급하면 꼭 어딘가 실이 끊어지죠.”
사람의 사연을 실로 이어 붙이는 장인의 하루
박 장인의 작업에는 늘 누군가의 이야기가 따라붙는다.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가 직접 짠 목도리로 신랑에게 사랑을 전하고 싶다며 배움을 청하기도 하고, 80세 노모를 위해 담요를 짜고 싶은 50대 딸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럴 때 박 장인은 단순히 기술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함께 시간을 나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주문은 군 복무 중 세상을 떠난 아들의 추억을 간직하고 싶다는 어머니의 의뢰였다. 아들이 마지막으로 입었던 니트 조끼를 분해해 그 실로 작은 베개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이었다. 박 장인은 실을 조심스럽게 풀어 새로 엮었고, 아들의 이름 이니셜을 패턴으로 넣었다. “그 실이 울 때마다 가슴이 뭉클했어요. 저는 그 조각이 그 어머니에게 남은 유일한 연결이란 걸 알고 있었거든요.”
그녀는 뜨개질을 ‘기억 복원 작업’이라고 말한다. 단지 물건을 짜는 것이 아니라, 관계와 감정, 사람 사이의 따뜻함을 다시 엮어내는 일이라고 믿는다.
실과 바늘로 오늘을 짜내는 삶을 사는 장인의 하루
박선희 장인은 지금도 하루 다섯 시간 이상을 뜨개질에 쏟는다. 요즘은 젊은 사람들에게 뜨개를 알려주는 ‘감정 뜨개 워크숍’도 진행한다. 색깔과 실 종류를 선택하고, 자신의 감정을 실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말보다 실이 솔직할 때가 있어요. 손이 먼저 알아채는 감정이 있거든요.” 수강생들은 각자 짜놓은 조각을 들고 돌아가며, “내 마음을 만질 수 있었다”라고 말한다.
그녀의 공방 한쪽 벽에는 누군가에게 건넨 뜨개물의 사진이 걸려 있다. 유아용 모자, 아기 인형, 커다란 숄, 사랑하는 반려견을 위해 짠 담요까지. 그 옆에는 손편지가 꽂혀 있다. “손끝에서 마음이 느껴졌어요.”, “이 니트를 입고 하루를 견딜 수 있었어요.” 이런 말들이 그녀의 손을 다시 바늘로 이끈다.
박 장인은 말한다. “실은 언젠가 끊겨요. 하지만 그걸 다시 묶는 것도 사람입니다.” 그녀는 끊긴 실을 묶고, 늘어진 코를 바로잡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다시 잇는다. 바늘과 실로, 오늘도 누군가의 마음을 조용히 짜내는 장인의 하루는 그렇게 흘러간다.
실로 기억을 잇고, 마음을 짜는 뜨개질 장인. 그녀의 바늘 끝에서는 단지 옷이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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