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의 하루

장인의 하루, 동네 숨은 고수 인터뷰! 손글씨 간판 장인이 지켜낸 거리의 온기

goomio1 2025. 7. 6. 06:14

거리에 남겨진 손글씨, 마음을 붙잡다

거리를 걷다 보면 비슷한 간판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컴퓨터로 뽑아낸 인쇄체 글씨, 자극적인 색상, 밝은 LED 조명. 모두의 눈에 띄기 위해 애쓴 흔적들이지만, 어쩐지 그 앞을 지나칠 때 마음에 오래 남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중, 간혹 눈에 띄는 손글씨 간판이 있다. 조금은 삐뚤고, 선이 불균형하지만 이상하게 따뜻한 기분이 든다.

서울 중구의 오래된 골목, 그 손글씨 간판을 지금도 붓으로 써 내려가는 장인이 있다. 그의 이름은 최영만(가명), 72세. 그는 지난 45년간 오직 붓과 먹, 그리고 나무판만으로 수백 개의 간판을 써왔다. 속도가 아닌 정성으로, 규격이 아닌 감성으로 글씨를 쓴 그는 이제 ‘거리에 남은 마지막 손글씨 장인’으로 불린다.

매일 아침, 그는 먹을 갈고, 붓을 다듬고, 나무판을 천으로 닦으며 하루를 연다. “글씨에는 마음이 담깁니다. 손으로 쓴 글씨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품고 있어요.” 그는 고객의 이름, 가게 분위기, 원하는 느낌을 꼼꼼히 수첩에 적고, 붓을 들기 전까지 수십 번을 상상한다. 그렇게 완성된 글씨 하나가 바로, 골목의 공기를 바꾸는 문장이 된다.

 

장인의 하루 손글씨 간판 장인인 동네 숨은 고수

글씨는 성격을 닮는다

최 장인은 간판 하나를 쓰기 위해 최소 이틀 이상을 투자한다. 종이에 여러 번 스케치를 하고, 붓의 모를 정리한 다음, 나무판의 표면 상태를 확인한다. “종이가 아닌 나무에 글을 쓴다는 건, 한 번의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뜻이죠.” 먹의 농도나 붓의 각도가 조금만 어긋나도 전체 구도가 틀어지기 때문이다.

한 번은 독립 서점을 운영하는 젊은 부부가 그에게 간판을 맡겼다. 서점의 이름은 ‘틈새책방’이었다. 최 장인은 이 이름이 갖는 여백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글자 간격을 의도적으로 넓히고, 획 하나하나를 가볍게 눌러 표현했다. 완성된 간판은 얼핏 보면 심플했지만, 그 안에는 ‘틈을 채우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또 다른 의뢰는 40년 된 분식집에서 들어왔다. 주인 할머니는 “그냥 ‘할매김밥’이라고 써주세요”라고 했다. 최 장인은 처음에 반듯하고 정갈하게 써 내려갔다. 그러나 간판을 보던 할머니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우린 그런 집 아니야. 좀 삐뚤빼뚤해야 정이 가지.” 그날 밤 그는 다시 붓을 들었다. 조금 기울고, 덜 정돈된 글씨를 썼고, 그 간판은 완성되자마자 동네 아이들의 사진 배경이 되었다.

 

기계가 담을 수 없는 선

요즘 세상엔 손글씨 간판보다 LED 간판이 더 빠르고 저렴하다. 단시간에 뽑아낼 수 있고, 눈에 잘 띄기도 한다. 하지만 최 장인은 말한다. “눈에 띄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마음에 남는 게 중요하죠.” 기계는 정갈함을 만들 수 있지만, 감정을 담지는 못한다.

그의 붓 끝에는 의도된 흔들림이 있다. 그는 일부러 ‘완벽하게 쓰지 않는다.’ 번짐과 들쭉날쭉한 획은 실수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이 바로 손글씨의 생명력이다. 실제로 그는 글씨를 쓰면서 “여기서 조금 더 눌러야 따뜻해지고, 여기서는 힘을 빼야 사람 냄새가 나요”라고 설명한다. 글씨가 감정을 담는 그 순간, 단순한 간판이 아닌 ‘기억이 되는 문장’이 완성된다.

홍대 앞 작은 공방 간판을 써줄 땐, 한낮 더위 속에서도 붓을 멈추지 않았다. 주인이 말하길, “장사 잘되게 해 주세요.” 그는 거기에 이렇게 썼다.

“이곳에서 당신의 시간이 머뭅니다.”
이 문장은 SNS에서 빠르게 퍼졌고,
사람들은 “이 간판 덕분에 들어가 봤다”고 입을 모았다.
글씨 하나가 공간을 바꾸고, 사람을 불러 모은 순간이었다.

 

사라지는 기술, 남겨야 할 감정

손글씨 간판은 더 이상 흔하지 않다. 간판 회사들도, 디자이너들도, 장인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 장인은 붓을 놓지 않는다. 그는 지금도 말없이 먹을 갈고, 나무판에 글씨를 올린다. 그리고 다 쓰고 나면, 간판 뒤에 작은 글씨로 날짜를 남긴다. “2025. 7. 3. 손글씨 장인 최영만 作”이라고.

최근 그는 젊은 제자 한 명을 받아들였다. 디자인을 전공한 청년은 "기술보다 철학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말한다. “손글씨는 도구로 배우는 게 아닙니다. 사람을 오래 바라보는 눈을 갖는 것부터 시작이에요.” 그는 제자에게 글씨 연습보다는 사람들과 더 많이 이야기하라고 당부한다. 글씨는 결국, 마음에서 나오는 선이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사라지고 있는 손글씨 간판. 그러나 그 하나만으로도 사람의 감정이 흔들리고, 공간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최 장인의 붓 끝에서 완성되는 간판은 단지 상호명이 아니라, 가게 주인의 소망과 기억을 담은 이야기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오늘도 서울의 작은 골목 어귀에, 조용히 살아 숨쉬고 있다.


서울 골목 어귀, 붓으로 간판을 쓰는 장인이 있다. 손글씨 하나로 사람의 마음을 붙잡는 그의 하루는 사라진 기술을 지켜내는 기록이다.


손글씨 간판 장인, 붓글씨 간판 제작, 간판 디자인 인터뷰, 수작업 간판, 아날로그 감성, 장인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