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장인의 하루는 고장 난 우산을 고치는 사람
요즘 같은 시대에 우산을 수리해 쓰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은 부러지거나 찢어진 우산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새것을 산다. 빠르게 소비하고 쉽게 버리는 문화 속에서 우산 수리는 그야말로 '잊힌 기술'이다. 하지만 서울의 한 재래시장 한편, 매일 아침 우산살을 펼치고, 천을 꿰매며 하루를 시작하는 장인이 있다.
그는 김재호(가명, 74세). 42년째 고장 난 우산만을 고쳐온 고수다. 간판도 없이 장사하지만, 그를 아는 이들은 ‘우산을 살리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김 장인은 말한다. “우산은 비를 막는 게 아니라, 사람의 시간을 보호하는 도구예요. 그래서 함부로 버려지면 안 되죠.” 그의 손에 들어온 우산은 다시 바람을 견디고, 다시 비를 막는다. 그렇게 그는 오늘도 ‘버려질 뻔한 것들’을 살려낸다.
장인의 하루는 작은 수리대 위에 쌓인 시간
김 장인의 수리대는 작고 낡았다. 나무 상판엔 낡은 도구들과 실, 천 조각이 뒤섞여 있고, 벽에는 잘린 우산살이 다발처럼 걸려 있다. 우산 하나를 고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5분에서 길게는 한 시간. 그는 우산을 펼쳐 살의 상태를 확인하고, 찢어진 천은 가능한 한 원단 색깔에 맞게 꿰맨다. 비슷한 천이 없으면, 흑백천이나 꽃무늬 원단을 사용하기도 한다. “조금 다르면 어때요. 비만 막으면 되죠. 오히려 그게 멋일 수도 있어요.”
그의 손님 중에는 매번 같은 우산을 들고 오는 30대 여성도 있다. 그 우산은 그녀의 어머니가 쓰던 것으로, 손잡이와 천은 많이 낡았지만, 그녀는 절대 버리지 않는다. 김 장인은 그 우산을 이미 7번 넘게 고쳤다. “가게 하면서 이런 우산이 제일 고마워요. 사람이든 물건이든 쉽게 버리지 않는 게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몰라요.” 그는 그렇게 ‘지속’이라는 가치를, 낡은 우산 하나로 증명해 낸다.
장인의 하루는 기술보다 중요한 건, 그 물건을 대하는 태도
요즘엔 우산을 수리하는 기술 자체를 배우려는 사람도 없다. 우산은 너무 싸고, 고치는 일은 번거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장인은 다르게 생각한다. “싸다고 쉽게 버리면, 물건뿐 아니라 사람 마음도 무뎌지는 거예요.” 그는 아이들이 자기 물건을 아끼는 습관을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래서 아이가 우산을 고치러 오면, 무조건 수리비를 받지 않는다. 대신 그 아이에게 우산살 하나를 직접 꺾어보고, 수선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기억에 남는 손님 중에는 유난히 조용한 남학생이 있었다. 찢어진 캐릭터 우산을 들고 와 “이거 고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그 우산은 이미 천이 반쯤 벗겨져 있었고, 손잡이도 갈라져 있었다. 하지만 김 장인은 천을 다시 꿰매고, 손잡이는 나무 조각을 깎아 새로 만들어주었다. 소년은 수리된 우산을 보며 웃었고, 며칠 뒤, 손으로 그린 감사 편지를 들고 다시 찾아왔다. “이 우산은 아빠가 사준 거예요. 꼭 쓰고 싶었어요.” 그날 이후 그는 절대 손님을 무심히 대하지 않는다.
장인의 하루는 낡은 것에 깃든 정성과 지속의 가치
이제 우산 수리점을 찾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끔은 하루에 한 명도 오지 않는 날도 있다. 하지만 김 장인은 가게 문을 닫지 않는다. “내가 이 자리에서 우산을 고친다는 걸 아는 사람 한 명이라도 있다면, 나는 그걸로 충분해요.” 그는 수리보다 '존재'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눈에 띄지 않지만, 꼭 필요한 일을 조용히 해내는 것.
그는 지금도 매주 시장 상인들의 우산을 정기적으로 수리해주고 있다. 특히 여름철에는 장맛비가 잦기 때문에, 바람에 꺾인 우산이 많이 들어온다. 김 장인은 “바람에 부러진 우산은 다시 펴면 더 튼튼해진다”라고 말한다. 마치 사람에게 하는 말 같다. “한 번 망가졌다고 끝난 건 아니에요. 다시 고쳐서 펴면, 원래보다 더 강해져요.” 그의 말에는 삶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다.
김 장인의 하루는 그렇게 작고 조용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그 손끝에서 되살아난 우산은 비 오는 날, 누군가의 삶을 조용히 지켜주는 또 하나의 날개가 된다.
서울의 재래시장 한켠, 낡은 우산을 다시 펴주는 장인이 있다. 그는 비를 막는 기술보다, 삶을 아끼는 손끝을 가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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