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대패를 드는 사나이의 이유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톱 대신 마우스를 쥐고, 나무 대신 화면을 다듬는다. 속도와 효율이 지배하는 시대,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손끝 감각으로 삶을 표현하는 사람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서울의 한적한 골목 끝, 그 변화와는 거리를 둔 채 오늘도 대패를 손에 쥐는 한 사람이 있다. 그는 기계의 시대에 역행하는 듯 보이지만, 오히려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감각을 지닌 장인이다.
서울 북쪽 끝자락, 조용한 주택가 골목 안에 오래된 공방이 있다. 외관만 보면 버려진 창고 같지만,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은은한 나무 향과 쓱쓱 울리는 대패 소리가 이 공간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곳은 김진호(가명) 목수가 53년 동안 나무와 함께 호흡해 온 작업실이다. 그는 대패 하나로 가구를 깎고, 삶을 다듬으며 지금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곳을 지켜왔다.
김 목수는 말수가 많지 않지만, 그의 손은 많은 이야기를 전한다. “기계는 빠르지만, 손은 정확해요. 특히 마음을 담을 수 있죠.”라고 그는 말한다. 작업장의 바닥에 깔린 나무 부스러기와 먼지는 오히려 그의 시간이 차곡차곡 쌓인 흔적이다. 그가 깎는 건 가구가 아니라, 삶의 결이자 시간의 단면이다.
손끝으로 느끼는 나무의 언어
김 목수는 젊은 시절 대기업 가구공장에서 일했다. 매뉴얼에 따라 빠르게 물건을 만드는 시스템은 그의 성향과 맞지 않았다. 그는 “빨리 만드는 가구보단, 오래 쓰이는 가구를 만들고 싶다”며 회사를 나와 스스로 작은 공방을 열었다. 손바닥보다 작은 그 공간에서 그는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무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무는 사람처럼 각각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어떤 나무는 억세고, 어떤 나무는 부드럽다. 김 목수는 나무를 만지면 단번에 그 특성을 알아차린다. “나무를 억지로 자르면 안 돼요. 설득하듯 천천히 밀어줘야 곡선이 나와요.” 그는 작업을 단순한 제작이 아닌 ‘대화’라고 부른다. 특히 그가 가장 사랑하는 작업은 ‘의자’다. 그 사람의 체형, 앉는 자세, 허리 각도까지 고려해 만드는 의자 하나에 그는 며칠을 투자한다.
“좋은 의자는 몸을 쉬게 하고, 마음도 앉게 해요.” 그의 말처럼, 그의 손에서 나온 가구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휴식의 형태이자 관계의 모양이다. 그는 도면보다 사람을 먼저 본다.
사라지는 기술, 남겨야 할 철학
대량생산과 값싼 가구가 넘쳐나는 시대, 손으로 나무를 깎는 김 목수의 작업은 ‘비효율’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웃으며 말한다. “기계로 만든 건 금방 버리지만, 손으로 만든 건 오래 씁니다. 왜냐하면 정이 들거든요.” 실제로 그의 손을 거친 가구들은 10년, 20년이 지나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그를 찾아오는 젊은 손님도 늘고 있다. 직접 만든 가구를 갖고 싶다는 이들, 손의 감각을 배우고 싶다는 청년들, 그리고 디지털에 지친 감성을 위로받고 싶은 이들. 김 목수는 그들에게 기술보다 ‘느낌’을 먼저 가르친다. “도면은 눈으로 보지만, 나무는 손으로 느껴야 해요.” 그는 사람들에게 작업 속도의 중요성보다 ‘손의 무게’를 먼저 알려준다.
그가 강조하는 건 오차가 아닌, 일관된 진심이다. 비뚤어진 선 하나에도 정성이 담겨 있다면, 그것이 바로 작품이다. 그는 하루에도 수십 번 대패를 갈고, 나무를 만지고, 쉼 없이 손을 움직인다. 거기에는 상업적 목적이 아닌, 사람과 나무 사이의 믿음이 있다.
대패 소리 속에서 깎아낸 하루
김 목수는 여전히 대패를 든다. 손끝의 감각은 예전보다 둔해졌지만, 마음은 더 섬세해졌다. “나무는 기다려줍니다. 급하게 하지 않아도, 늘 그 자리에 있어요.” 그의 하루는 매우 단순하다. 도면을 그리고, 나무를 고르고, 조용히 깎는다. 그리고 해가 지면, 만든 가구 옆에서 오늘 하루를 돌아본다. 그의 작업대 위에는 어떤 날은 조각이, 어떤 날은 단순한 의자가 남는다.
그가 만든 가구는 사람의 마음을 쉬게 한다. 그리고 그 마음은 또 다른 사람의 공간에서 오래 살아남는다. 김 목수는 말한다. “내 가구가 누군가의 인생을 편하게 해줬다면, 나는 충분히 잘한 거예요.” 대패 하나로 삶을 깎아낸 그의 손끝은 지금도 묵묵히 사람들의 쉼을 만들어내고 있다. 소리 없이 깎여나가는 나무속에는 장인의 온기가 남아 있다.
속도의 시대에 느림을 선택한 한 목수. 53년간 대패 하나로 삶과 쉼을 깎아온 그의 손끝에는 시간보다 깊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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