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의 하루

장인의 하루, 동네 숨은 고수 인터뷰! 자전거를 수리하며 사람을 고치는 장인

goomio1 2025. 7. 5. 22:50

멈춘 페달, 다시 굴러가는 마음

고장 난 자전거를 수리하는 건 단순히 체인을 조이고 바퀴에 바람을 넣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멈춘 시간과 기억을 다시 굴러가게 하는 작업이다. 서울의 오래된 골목 한편, 간판도 없는 자그마한 수리점에서 한 남자가 조용히 손에 기름때를 묻힌다. 그가 고치는 건 타이어도, 브레이크도 아닌, 다시 달리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성북구의 낡은 시장길 모퉁이, 오래된 철제 문이 반쯤 열린 작업장 안. 이곳이 바로 67세 자전거 장인 이만수(가명) 씨의 공간이다. 38년 전 처음 자전거를 고치기 시작한 그는 지금까지 수천 대의 자전거를 다시 달리게 했다.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가게 문을 연다. 누구든 고장 난 자전거를 들고 들어오면, 그는 묻지도 않고 고쳐준다. “자전거는 사람을 닮았어요. 넘어지기도 하고, 망가지기도 하죠. 중요한 건, 다시 굴러가게 하는 거예요.”

 

장인의 하루 자전거를 수리하며 사람을 고치는 장인

정비보다 먼저 필요한 건 이해

이 씨는 자전거를 단순한 기계로 보지 않는다. 사용자의 습관과 상태를 먼저 묻는다. 어떤 이는 출퇴근용, 어떤 이는 취미용, 또 어떤 이는 삶의 유일한 이동수단이다. 그는 말한다. “자전거는 고장 난 곳만 손보면 안 돼요. 왜 고장 났는지부터 알아야죠.” 그래서 그는 고치는 것보다 듣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쓴다.

한 번은 배달일을 하던 젊은 청년이 “기어가 잘 안 바뀐다”며 자전거를 맡겼다. 이 씨는 청년과 대화하던 중, 최근 스트레스로 자전거를 거칠게 다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브레이크 패드는 멀쩡했지만, 마음이 닳아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전거를 고치며 청년에게 말했다. “천천히 가도 괜찮아요. 멈출 수 있는 게 중요하죠.”

또 다른 고객은 50대 여성으로, 남편과 함께 오랫동안 타던 자전거를 갖고 왔다. 남편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뒤, 그녀는 자전거를 더 이상 탈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날 마음을 다시 내고 자전거를 꺼냈지만, 타이어는 바람이 빠지고, 체인은 녹슬어 있었다. 이 씨는 그 자전거를 하루 종일 정비하며, 흠집 하나 없이 닦아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새 벨을 달아주었다. “이제 이 자전거가 다시 당신 곁을 지켜줄 겁니다.”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갔다.

 

페달을 다시 밟는 선택

그의 작업장은 동네 아이들부터 어르신까지 모두가 들르는 ‘회복소’ 같은 공간이다. 단순한 수리가 끝나고 나면, 손님들은 자전거를 직접 타보며 브레이크 감도, 핸들 방향까지 점검받는다. “불안한 자전거는 오래 못 갑니다. 삶도 그래요. 똑바로 잡고, 브레이크는 잘 들어야 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은 은퇴한 60대 남성이었다. 처음엔 자전거 체인을 갈아달라고 왔지만, 이 씨는 그 자전거의 안장과 핸들도 오래된 상태라는 걸 알아챘다. 그는 새 부품으로 바꾸는 대신, 안장의 쿠션을 직접 덧대고, 핸들에 테이프를 말아 편안하게 만들었다. 그 남성은 며칠 뒤 다시 찾아와 말했다. “그 자전거 덕분에 매일 집 앞 공원을 한 바퀴 도는 습관이 생겼어요. 그게 제 하루의 힘이 됐습니다.”

최근에는 아이들과 함께 고장 난 자전거를 고치는 ‘찾아가는 자전거 교실’도 운영 중이다. 그는 아이들에게 펜치를 쥐게 하고, 타이어에 공기를 넣게 하며 말한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고칠 필요는 없어. 어디가 고장 났는지를 느끼는 게 더 중요해.” 아이들은 자전거를 고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방법을 배운다.

 

자전거를 고친 게 아니라, 사람을 고쳤다

이만수 씨는 자신을 ‘정비공’이 아니라 ‘재출발 도우미’라고 부른다. 벽면에 붙은 손 편지들은 그를 그렇게 만들어줬다. “이 자전거 덕분에 면접을 보러 갈 수 있었어요”, “기어를 고치고 나니까 내 마음도 굴러가기 시작했어요.” 이런 말들이 그에게 오늘도 손에 기름을 묻히게 한다.

그가 고치는 것은 결국 자전거가 아니라, 사람의 일상이다. 누군가의 무너진 루틴, 멈춰버린 속도, 사라졌던 자신감을 하나씩 회복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수리비를 따로 정해두지 않는다. 손님이 내는 만큼만 받는다. “고쳐야 할 건 자전거지만, 붙잡아야 할 건 그 사람 마음이니까요.” 그 말에는 돈보다 중요한 가치가 담겨 있다.

오늘도 그의 손끝에서 자전거는 다시 굴러간다. 낡고 멈췄던 두 바퀴는 다시 바람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간다. 이만수 씨의 하루는 그렇게, 누군가의 삶을 다시 앞으로 밀어주는 조용한 페달질로 이어진다.


서울의 작은 골목, 자전거 수리를 넘어 사람의 마음까지 고치는 장인이 있다. 그의 손끝에서 고쳐진 것은 기계가 아니라, 재출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