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시계, 사람의 기억도 멈추는 장인의 하루
사람들은 시계가 멈추면 단순히 고장 났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그 시계가 아버지의 유산이고, 누군가에게는 연인의 마지막 선물이며, 어떤 이에게는 어린 시절의 추억일 수도 있다. 시계는 시간을 알려주는 기계이지만, 그 안에는 삶의 한 순간이 담겨 있다.
서울 종로구 종묘 근처, 낡은 시계 수리점 하나가 있다. 간판도 희미하고, 창문엔 먼지가 앉아 있지만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수십 개의 시계들이 조용히 벽을 채우고 있다. 그 가운데 작은 작업대를 지키는 이가 있다. 이정환(가명), 72세 시계 장인이다. 그는 45년 넘게 사람들의 시계를 고쳐왔다. “나는 시간을 고치는 게 아니라,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멈춘 기억을 다시 되살린다.
장인의 하루는 시계 속 톱니가 말해준다
이정환 장인의 하루는 정갈하다. 매일 아침 7시, 가게 문을 열고 제일 먼저 전날 분해해 둔 시계를 살펴본다. 그리고 그 안의 톱니, 태엽, 스프링을 천천히 점검한다. “사람 몸처럼 시계도 아픕니다. 겉으로 멀쩡해 보여도 속이 다 닳았을 수 있어요.”
가장 중요한 건 ‘소리’다. 시계에서 나는 째깍거림, 진동음, 태엽이 감기는 느낌. 이 장인은 눈보다 귀로 먼저 시계를 진단한다. 한 번은 40년 된 독일제 벽시계를 들고 온 손님이 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쓰시던 건데, 고칠 수 있을까요?” 그 시계는 고장 난 지 10년이 넘었고, 부품도 구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하지만 이 장인은 직접 황동 조각을 깎고, 사라진 기어를 새로 만들었다. 결국 시계는 ‘째깍’ 소리를 되찾았고, 손님은 말없이 시계를 품에 안고 돌아갔다.
그는 말한다. “고치는 건 기계지만, 결국에는 사람의 감정을 다루는 일이에요.” 그래서 그는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시계 하나에 며칠이 걸릴 수도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생각하면 오히려 조심스러워진다.
장인의 하루는 수리보다 중요한 건 시간을 대하는 태도라고 말한다
요즘 사람들은 시계를 고치기보다 새로 산다. 특히 스마트워치나 디지털 기기가 보편화된 시대, 기계식 시계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이 장인은 여전히 아날로그시계만을 다룬다. 이유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기계식 시계는 사람 손을 타야만 돌아가요. 그게 좋아요. 손으로 감아줘야 움직이는 시계는, 손의 온기를 기억하죠.”
그는 시계 하나하나에 주인의 성격이 묻어 있다고도 말한다. 어떤 시계는 지나치게 빠르고, 어떤 시계는 살짝 느리다. 어떤 사람은 정확한 시간보다 ‘느낌’을 중요시하고, 또 어떤 사람은 초침 하나 움직이는 각도에 민감하다. “시계는 결국 그 사람의 시간을 반영하는 거예요. 똑같은 시계는 없습니다.”
기억에 남는 손님 중에는 30대 청년이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회중시계를 들고 와 “시간을 복원해달라”고 했다. 그 시계는 1960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부품이 모두 녹슬고 내부는 부서진 상태였다. 이 장인은 손으로 하나하나 다시 조립하고, 유리를 갈아냈으며, 태엽을 직접 감아 소리를 되살렸다. 청년은 시계를 보고 말했다. “아버지와 대화하는 느낌이 들어요.” 이 장인은 그 말에 한참 말이 없었다.
조용히 흘러가는 진짜 시간들이 장인의 하루이다
이정환 장인의 작업실은 음악도, TV도 없다. 대신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만이 공간을 채운다. 그는 하루에도 수십 번, 고개를 숙여 나사를 조이고 태엽을 감는다. 손은 주름졌지만, 그의 손끝은 여전히 정교하다. 그는 말한다. “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아요. 하지만 고장 났을 때는 분명히 느껴져요. 그래서 나는 그 ‘느낌’을 되살리는 일을 합니다.”
그의 수리점에는 감사 편지가 붙어 있다. “결혼식 날 받은 시계를 다시 고쳐주셔서 감사합니다”, “퇴직 기념 시계가 다시 돌아가서 울었습니다.” 이런 말들이 그의 하루를 다시 흐르게 한다.
지금도 그의 가게 문은 느리게 열리고, 낡은 시계 하나가 맡겨진다. 그는 말없이 그 시계를 받아 들고, 먼저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손에 공구를 들고, 시간이 다시 흘러갈 준비를 시작한다. 그렇게 또 하나의 멈춘 시간이 다시 살아난다. 그의 하루는 늘 그렇듯 조용하지만, 결코 멈추지 않는다.
종로의 시계 수리점, 45년 경력 장인이 멈춘 시간을 되살린다. 그는 시계를 고치며 사람의 기억과 감정까지 복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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