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를 만지는 사람인 장인의 하루
바이올린은 보기엔 작고 가볍지만, 그 안에는 수십 년을 버티는 나무, 소리의 균형을 잡아주는 혼, 그리고 연주자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다. 이 작은 현악기 하나에 수많은 인생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바이올린이 상했을 때, 그것을 다시 살리는 손이 있다. 서울 성북동의 조용한 주택가 골목, 그곳에 바이올린 수리 장인 이병우(가명, 69세) 씨가 있다.
그는 40년 넘게 바이올린 수리를 해왔다. “나는 소리를 고치는 사람이에요”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그는, 단순히 악기를 고치는 기술자가 아니다. 그는 소리를 듣고, 악기의 몸통을 어루만지며, 마치 ‘보이지 않는 그림’을 그리듯 바이올린의 생기를 되살린다. 하루에 단 한 대, 바이올린 하나만 집중해서 고치는 그의 방식은 느리지만 섬세하다.
장인의 하루는 손끝의 감각으로 균형을 다시 짜 맞춘다
바이올린 수리는 단순히 깨진 부분을 접착하거나 줄을 교체하는 일이 아니다. 소리가 흔들린다면, 내부 구조부터 다시 점검해야 한다. 이병우 씨는 바이올린을 손에 들면 가장 먼저 소리를 들어본다. “소리가 맑지 않으면, 어디선가 틀어졌다는 거죠. 나무는 숨을 쉬기 때문에, 조금의 뒤틀림도 소리에 영향을 줘요.”
그는 나뭇결을 따라 균열이 생긴 부분을 찾아내고, 활과 브리지(다리)의 균형을 다시 조절한다. 어느 날, 한 고등학생이 울먹이며 바이올린을 들고 왔다. 콩쿠르를 앞두고 있는데 갑자기 소리가 뭉개진다는 것이다. 그는 바이올린을 유심히 보며 말없이 손끝으로 바디를 누르고 눌렀다. 결국 내부에 미세한 공명판 균열을 찾아냈고, 조심스럽게 복원했다. 연주자가 다시 활을 켜는 순간, 맑고 투명한 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아이는 “이 악기가 숨을 쉰다”라고 말했다.
음의 균형 속에 담긴 삶의 온도가 장인의 하루이다
이병우 장인은 바이올린 수리를 ‘음의 균형을 회복하는 작업’이라 부른다. 그는 연주자의 손가락 길이, 연습 습관, 연주의 강도에 따라 악기의 마모나 손상 부위가 달라진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그는 절대 기계적으로 수리하지 않는다. 모든 수리는 사람에 따라 달라야 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기억에 남는 손님 중엔, 바이올린을 40년간 보관해 온 할머니가 있었다. 젊은 시절 남편이 연주하던 악기였는데,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줄곧 장롱 속에 넣어뒀다고 했다. 그녀는 손자의 초등학교 입학을 기념해 그 악기를 다시 살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 장인은 그 악기를 며칠에 걸쳐 닦고, 내부 먼지를 제거하고, 나무를 다시 숨 쉬게 만들었다. 수리가 끝난 후, 할머니는 악기를 가슴에 안고 한참을 눈을 감았다. “이 소리는 남편의 숨결 같아요”라고 말했다.
소리를 복원하는 장인의 하루는 기억을 복원하는 일이다
이 장인의 공방은 여느 악기점과는 다르다. 반짝이는 새 바이올린은 없고, 오래된 악기들이 조용히 벽을 따라 걸려 있다. 그는 “수리받으러 오는 악기 중에는 10년 이상 방치된 것도 많아요. 하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소리가 살아 있어요. 그걸 다시 꺼내는 게 제 일이죠.”
그는 하루 한 대 이상의 수리는 하지 않는다. 그 이상은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때문이고, 모든 악기에 ‘귀’를 열어줘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손에는 늘 정교한 공구와 함께, 마감용 천 조각과 오일이 놓여 있다. 그는 말한다. “소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손끝으로는 느껴져요. 그 느낌을 다시 살려내는 게 진짜 수리예요.”
오늘도 그의 작업실에는 낡은 바이올린이 하나 놓여 있다. 그리고 조용한 실내엔 가끔 ‘딱’ 소리와 함께 나무가 숨을 쉬는 소리가 울린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활을 꺼내 튜닝을 시작한다. 그의 하루는 그렇게 소리를 다시 그리고, 기억을 다시 불러내는 시간으로 채워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를 손끝으로 되살리는 장인이 있다. 바이올린 수리를 넘어, 기억까지 복원하는 장인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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