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신 한 켤레에 깃든 발걸음의 기억을 담은 장인의 하루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사람들은 편리한 운동화와 값싼 슬리퍼를 신는다. 발은 점점 무감각해지고, 신발은 점점 기계적으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지금도, 손으로 한 올 한 올 짚을 엮어 전통 짚신을 만드는 장인이 있다. 서울 외곽의 농촌 마을, 그곳에 사는 정봉채(가명, 78세) 씨는 오늘도 짚을 삶고 있다.
그는 50년 넘게 짚신만을 만들어왔다. “나는 짚신을 신는 게 아니라, 짚신으로 땅을 느끼는 거예요.” 정 장인은 사람들이 땅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을 아쉬워한다. 그래서 그는 손으로 땅의 결을 엮는다. 짚신은 단순한 신발이 아니라, 자연과 사람, 그리고 발 사이의 오래된 대화다.
장인의 하루 안에 깃든 한 올의 정성, 발의 기억을 되살리다
짚신을 만드는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고된다. 먼저 볏짚을 고르고, 햇볕에 말리고, 물에 불린 후, 손으로 삶는다. 그다음 가늘게 찢어 실처럼 만든 뒤, 손가락과 발가락만을 이용해 틀을 잡고 엮는다. “짚신은 기계로 못 만들어요. 손이 기억하는 대로 움직여야 하거든요.”
정 장인은 하루에 많아야 1~2켤레만 만든다. 그도 그럴 것이, 손가락 관절은 이미 닳아 있고, 어깨는 자주 쑤신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는다. 그의 작업대에는 발 크기와 걷는 습관이 기록된 수첩이 놓여 있다. “사람마다 걷는 방식이 달라요. 짚신도 그에 맞춰 만들어야 하죠.”
기억에 남는 손님 중엔, 무릎 통증에 시달리던 60대 남성이 있었다. 병원에서도 딱히 효과를 보지 못한 그는 전통 짚신이 발의 압력을 분산시킨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왔다. 정 장인은 그의 걸음걸이를 유심히 살핀 뒤, 앞코가 살짝 올라간 짚신을 만들어줬다. 두 달 뒤, 남성은 통증이 줄었다며 직접 쌀 한 가마를 들고 찾아왔다.
잊힌 전통 속에서 걷는 철학 장인의 하루
정 장인이 만드는 짚신은 단순히 전통 복원용 소품이 아니다. 실제로 신고, 걷고, 땀이 배어야 의미가 있다. 그래서 그는 “보기 좋으라고 만드는 짚신은 안 한다”라고 못 박는다. 그의 고객들은 농사짓는 어르신, 등산 마니아, 또는 걷기 치료를 받는 이들이다.
짚신을 처음 신는 사람들은 대부분 ‘불편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며칠만 지나면 오히려 발이 편하다고 말한다. “신발이 발을 꽉 잡으면, 발이 말을 못 해요. 짚신은 발이 스스로 움직이게 해 줘요.” 그는 발의 자율성과 감각을 강조한다. 그래서 그는 종종 아이들을 위한 짚신도 만든다. “어릴 때부터 발이 흙을 알아야 해요.”
짚신을 넘어, 뿌리를 짓는 손이 모여 장인의 하루로 태어난다
정 장인의 작업실에는 짚 냄새가 가득하다. 벽에는 30년 전 만든 짚신과 최근에 만든 짚신이 나란히 걸려 있다. 그는 종종 두 짚신을 번갈아 보며 말한다. “이건 내 젊은 날, 저건 내 지금의 마음.” 짚신은 그에게 단순한 작업물이 아니라 삶의 연대기다.
지금은 일부 전통학교나 민속촌에서 강의도 하지만, 그는 여전히 혼자 작업하는 걸 고집한다. “사람마다 짚을 다루는 손맛이 다르기 때문에, 나는 내 짚신을 만들 뿐이에요.” 그는 전통을 계승하려 애쓰기보다는, 그저 자기 삶을 짓는다는 마음으로 실을 잇는다.
짚신은 더 이상 일상적인 신발이 아니다. 그러나 정봉채 장인의 하루는 여전히 짚을 삶고, 실을 뽑고, 발의 언어를 엮으며 흘러간다. 그리고 그 발걸음 위에는 한 시대의 무게가 고요히 실려 있다.
짚을 삶고 엮어 신발을 만드는 장인. 전통 짚신 한 켤레로 사람의 발과 땅을 다시 이어주는 그의 하루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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