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연필도 장인의 하루 손끝에서 새로 태어난다
디지털 시대에도 연필은 여전히 사용된다. 학교에서는 시험용 연필, 작가들은 스케치용 연필, 어린아이들은 처음 글씨를 배울 때 손에 쥔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연필이 닳으면 그냥 버리고 새것을 산다. 서울 성동구의 조용한 골목 안, 오래된 공방에서는 유정석(가명, 67세) 씨가 오늘도 연필을 깎고 있다. 그는 40년 넘게 연필 깎기와 연필깎이 수리, 연필 맞춤 제작까지 해온 장인이다.
유 장인은 말한다. “연필 하나에도 사람이 담겨요. 어떻게 쓰고, 어떻게 깎는지에 따라 그 사람 느낌이 다르죠.” 그의 하루는 그렇게 단순해 보이는 연필을 새롭게 살리고, 사람들의 손끝에서 다시 사용되게 만드는 일로 채워진다.
연필을 깎는 일은 마음을 다듬는 일인 장인의 하루
연필을 깎는 건 단순히 나이프로 깎는 것만이 아니다. 유정석 장인은 먼저 연필의 나무 재질과 흑연 심의 굵기, 쓰는 목적을 확인한다. 그림용인지, 필기용인지, 어린이용인지에 따라 깎는 각도와 길이를 달리한다. “심이 두꺼운 건 뭉툭하게, 필기용은 뾰족하게, 손에 맞춰야 해요.”
특히 기억에 남는 작업으로, 30년 된 일본제 고급 연필 복원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고객은 아버지의 유품이라며 낡은 연필 세 자루를 들고 왔다. 흑연 심이 끊어지고 나무도 갈라져 있었지만, 유 장인은 심을 새로 끼우고 나무를 얇게 갈아냈다. 완성된 연필은 새것처럼 보였지만, 원래의 색과 결을 그대로 살렸다. 고객은 “어릴 때 아버지가 쓰던 모습이 생각나요”라며 고마워했다.
연필깎이도 고쳐 쓰는 시대로 만든 장인의 하루
유정석 장인은 단순히 연필만 깎지 않는다. 오래된 수동식 연필깎이 기계도 수리하고 복원한다. 특히 1960~70년대 학교에서 사용되던 연필깎이들은 부품이 단종돼 있어, 직접 기어와 날을 제작해 교체한다.
한 번은 초등학교에서 기증받은 오래된 연필깎이를 수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 기계는 손잡이가 부러지고 내부 기어가 망가진 상태였지만, 그는 1주일에 걸쳐 모든 부품을 손으로 제작해 다시 움직이게 만들었다. 아이들이 다시 그 연필깎이를 돌려가며 웃는 모습을 보고, 그는 “내 손으로 시간을 돌린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연필깎이 날을 직접 갈고, 기계 내부까지 청소하는 것까지 포함해 완전한 복원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단골 고객 중에는 디자이너, 화가, 건축가들도 많다. “연필을 제대로 깎아야, 선도 제대로 그어지죠.”
오래된 연필이 다시 글씨를 쓰는 순간으로 탄생한 장인의 하루
요즘은 샤프펜슬이나 태블릿을 더 많이 쓴다. 하지만 유정석 장인은 여전히 연필의 가치를 믿는다. 그는 말한다. “연필은 지울 수 있어요. 그래서 더 사람 같아요. 실수해도 다시 쓰면 되죠.”
그의 작업실에는 다양한 브랜드와 시대의 연필들이 진열돼 있다. 1950년대 국산 연필, 독일제 미술용 연필, 어린이용 색연필까지. 모두 심이 잘 깎여 있고, 나무결도 반들반들하다.
오늘도 그는 작은 나이프와 사포를 들고 연필 하나하나를 다듬는다. 그리고 그 연필이 다시 누군가의 손에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상상한다. 유정석 장인의 하루는 그렇게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어주는 가장 작은 도구, 연필과 함께 조용히 흘러간다.
서울 골목, 오래된 연필을 깎고 연필깎이까지 수리하는 장인이 있다. 사람들의 기억을 이어주는 그의 하루를 소개한다. 장인의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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