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의 하루엔 나무에 이름을 새기는 사람 있다
골목길을 걷다 보면, 낡은 도장 가게 간판이 눈에 띈다. 현대적인 아크릴 간판이 아닌, 오래된 나무판에 정성껏 새긴 글자들이 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골목, 그곳 작은 목판각 공방에서 이기훈(가명, 64세) 씨는 오늘도 조용히 나무 위에 글자를 새기고 있다. 그는 40년 넘게 도장 간판과 목판각만을 전문으로 해온 장인이다.
이 장인은 말한다. “나무판에 새긴 글씨는 시간이 흘러도 남아요. 단순한 간판이 아니라, 사람 이름을 새기는 거죠.” 그의 하루는 그렇게 한 글자 한 글자, 나무를 깎아가며 시작되고 끝난다.
목판각은 글자를 새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새기는 일인 장인의 하루
목판각 작업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오래 걸린다. 먼저 나무를 고르고, 글씨체를 디자인한 후, 송곳으로 밑그림을 긋고 조각칼로 하나하나 파내야 한다. 이기훈 장인은 하루에 많아야 2~3개의 글씨만 새긴다. “기계로 파면 빠르지만, 손으로 파야 글씨에 힘이 들어가요.”
특히 기억에 남는 작업은 오래된 찻집 간판 복원이었다. 1970년대에 만든 찻집이 문을 닫았다가 다시 열면서, 원래 나무 간판을 그대로 복원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는 썩은 나무판을 그대로 살리고, 글씨도 원래의 붓글씨 느낌을 살려 다시 새겼다. 완성된 간판을 본 찻집 주인은 “이제야 가게가 제대로 돌아온 것 같아요”라며 감동했다.
나무판 하나에도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고 믿는 장인의 하루
이기훈 장인은 목판각 작업을 할 때 의뢰인과 반드시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다. “무슨 글씨를 새길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야 제대로 새길 수 있어요.” 그는 간판뿐만 아니라, 가정집 문패, 사찰 현판, 족자용 글씨까지 다양하게 작업한다.
한 번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품으로 문패를 새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고객은 어머니의 손글씨를 가져와 “이 글씨체 그대로 새겨주세요”라고 부탁했다. 이 장인은 그 글씨를 일일이 따라 그린 뒤, 나무판 위에 조각칼로 정성스럽게 새겼다. 완성된 문패를 본 고객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이건 그냥 간판이 아니라, 어머니와 다시 만난 것 같아요.”
사라지는 손기술, 이어지는 이름으로 남는 장인의 하루
요즘은 레이저 각인이나 컴퓨터 조각기가 대세다. 하지만 이기훈 장인은 여전히 손으로만 목판각을 한다. 그는 말한다. “기계로 만든 건 다 똑같아요. 사람 손으로 만든 건 다 달라요. 그게 사람답죠.”
그의 작업실 한쪽 벽에는 지금까지 작업한 목판들이 가득하다. 작은 문패부터 큰 절 현판까지, 모두 손으로 깎아 만든 것들이다. 어떤 것은 30년 전 작업한 것, 어떤 것은 최근 만든 것이다.
오늘도 그는 나무판 위에 송곳으로 밑그림을 긋고, 조용히 조각칼을 움직인다. “한 글자 한 글자 새길 때마다, 그 사람 이름을 마음속으로 부릅니다.” 이기훈 장인의 하루는 그렇게 사람들의 이름과 이야기를 나무 위에 조용히 새기며 흘러간다.
오늘도 장인의 하루가 시작되는 서울 인사동, 오래된 도장 간판을 손으로 새기는 장인이 있다. 사람 이름과 이야기를 나무 위에 새기는 그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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