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의 하루엔 멈춘 소리를 다시 흐르게 만드는 손이 있다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누군가는 다이얼을 돌려 주파수를 맞추고, 오래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잡음과 음악을 귀 기울여 듣는다. 서울 중구의 골목 안, 간판도 없는 한 작업실에서는 70세 라디오 수리 장인 김철수(가명) 씨가 오늘도 조용히 고장 난 소리를 되살리고 있다.
그는 40년 넘게 라디오만을 고쳐온 장인이다. 사람들은 이제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고, 뉴스도 앱으로 본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낡은 라디오의 진공관을 갈고, 안테나를 손질하며 말한다. “소리는 사라지지 않아요. 다만 길을 잃을 뿐이죠.” 그의 하루는 사라질 뻔한 소리들을 다시 제자리로 되돌리는 시간이다.
진공관 하나에도 기술보다 마음이 담기는 장인의 하루
김 장인의 작업은 단순한 수리가 아니다. 라디오마다 내부 구조가 달라 정해진 매뉴얼은 없고, 수리 과정도 매번 달라진다. 특히 1970년대 이전의 구식 라디오는 부품 수급도 어렵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졌기에 ‘경험과 감각’만이 유일한 해답이다.
그는 고장 난 라디오를 들여다보며, 먼저 귀를 가까이 댄다. 튜너의 떨림, 진공관의 전류 흐름, 스피커의 미세한 잡음을 들어본다. “고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이 라디오가 왜 멈췄는지, 그 이유를 귀로 알아내는 거예요.” 기억에 남는 사례로, 아버지의 유품이라며 고장 난 라디오를 들고 온 40대 여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라디오 내부에 있는 먼지를 털고, 부식된 회로를 복원하며, 고장 난 바늘을 다시 고정했다. 음악이 다시 흘러나오자, 그 여성은 조용히 눈시울을 붉혔다. “이 소리가, 아버지가 돌아온 것 같아요.”
장인의 하루 속 소리는 기억을 담는 매개체이다
김 장인에게 라디오는 단순한 기기가 아니다. 그는 “사람마다 듣던 소리가 있고, 그 소리를 통해 연결된 기억이 있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수리 의뢰를 받을 때 고객에게 꼭 묻는다. “이 라디오로 어떤 걸 들었나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나야만 제대로 고칠 수 있다고 믿는다.
한 번은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함께 듣던 클래식 방송을 다시 듣고 싶다며 고장 난 휴대용 라디오를 들고 온 남성이 있었다. 그 라디오는 심하게 부식돼 회로를 거의 전면 교체해야 했다. 김 장인은 그 라디오에 꼭 맞는 진공관을 일본 중고 시장에서 어렵게 구해 고쳤다. 그 남성은 말없이 라디오를 켜고, 천천히 음악이 흐르자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듣고 있었다. “이건 그냥 음악이 아니라, 내 과거의 방 냄새까지 생각나게 해요.”
장인의 하루 낡은 기계, 그리고 다시 흐르는 시간
김철수 장인은 하루에도 수십 개의 라디오를 열고 닫지만, 손길은 언제나 정성스럽다. 그는 각 라디오 안에 수리 일지와 자신의 손글씨 메모를 남긴다. “전류 조절 완료 / 진공관 교체 / 스피커 코일 리셋 / 마지막 확인: 7월 10일, 김철수.” 이 메모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그의 책임이자 예술이다.
그는 라디오를 단순히 소리를 내는 기계로 보지 않는다. 사람의 기억과 감정을 전하는 매개체라고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고장 난 소리를 다시 흐르게 하기 위해, 작은 나사 하나에도 온 힘을 다한다. 그의 손끝에서 다시 울리는 소리는, 단지 음악이 아니라 사람들의 시간이다.
서울의 골목 장인의 하루, 고장 난 라디오에 생명을 불어넣는 장인이 있다. 그는 소리를 고치며 사람들의 기억을 되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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