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의 하루

장인의 하루 동네 숨은 고수 인터뷰 중 담양 죽세공 장인 – 대나무 숲에서 피어난 삶의 예술

goomio1 2025. 9. 13. 07:39

담양은 대나무로 유명한 고장이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대숲은 낮은 음율을 뿜어내며,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사람을 감싼다. 이곳에서는 수백 년 동안 대나무가 단순한 식물에 그치지 않았다. 바구니, 발, 부채, 다용도의 생활 도구가 모두 대나무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플라스틱과 기계 생산품이 보급되면서 죽세공은 점차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대숲을 지키며 대나무를 손수 다듬는 장인이 있다. 박종현(가명) 장인은 40년간 대나무를 벗 삼아, 손끝에서 삶의 예술을 빚어온 죽세공 장인이다.

담양 죽세공 장인의 하루

그의 하루는 대나무의 숨결과 함께 흘러간다.

 

대나무와 함께 시작되는 장인의 하루

아침 해가 떠오르면 박 장인은 대숲을 찾는다. 죽세공의 핵심은 좋은 대나무를 고르는 일이다. 대나무는 곧고 매끈해야 하며, 나이 또한 중요하다. 그는 대나무의 마디를 두드리며 울림으로 나이를 가늠한다. “젊은 대는 부드럽고, 늙은 대는 단단하지요. 용도에 따라 고르는 게 다릅니다.”
잘라온 대나무는 일정 기간 말려야 한다. 햇볕에 직접 말리면 갈라지기 때문에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세워둔다. 건조 과정만 수개월이 걸린다. 장인은 그 시간을 기다리며 대나무의 결을 읽는다. 기다림의 시간은 이미 작업의 일부다.

 

장인의 하루는 손끝에서 태어나는 무늬들이다

건조된 대나무를 길게 쪼개어 가늘게 다듬는 과정은 숙련된 기술을 요구한다. 박 장인은 칼로 대를 쪼개면서 일정한 두께로 맞추고, 손끝으로 결을 살린다. 이렇게 만들어진 대나무 가늘대는 바구니, 발, 다다미, 소품 등 다양한 작품의 재료가 된다.
그의 작업실에는 크고 작은 바구니들이 줄지어 놓여 있다. 물건을 담는 단순한 기능을 넘어, 대나무 결이 빚어내는 무늬는 예술품과 같다. 촘촘하게 엮인 대나무 틈새는 숨을 쉬듯 살아 있고, 사용자가 손으로 만질 때마다 따뜻한 감촉을 준다. “죽세공은 손끝으로 대나무와 대화를 나누는 겁니다. 무늬는 대가 스스로 그려내는 거죠.”

 

대숲에서 이어온 전통이 녹아 있는 장인의 하루

죽세공은 단순히 물건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한국인의 생활과 밀접하게 이어져왔다. 곡식을 담는 소쿠리, 여름의 무더위를 막아주던 대발, 선비의 서재를 장식하던 죽필통까지, 대나무는 생활의 모든 곳에 스며들었다. 그러나 현대의 플라스틱 용기와 대량 생산품은 이런 전통 도구를 대체했다.
박 장인은 이 현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전통 방식으로 대나무를 엮는다. “플라스틱은 편리하지만, 세월을 견디지 못합니다. 대나무는 시간이 지나도 숨을 쉬며, 오히려 멋을 더해갑니다.” 그는 이 점이 바로 죽세공이 가진 가치라고 믿는다.

 

전통을 현대에 심는 장인의 하루

박 장인은 최근 젊은 세대와 소통하며 죽세공을 현대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대나무 컵받침, 인테리어 소품, 조명 갓 같은 작품은 전통적인 기법을 살리면서도 생활 속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 외국 관광객들은 그의 작품을 기념품으로 사가며, ‘K-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한다.
또한, 그는 지역 학교와 협력해 학생들에게 죽세공 체험을 가르치고 있다. 아이들은 대나무를 쪼개고 엮어보며 자연의 재료가 지닌 힘을 체험한다. “대나무는 꺾여도 다시 일어섭니다. 그 강인함을 아이들에게도 전하고 싶습니다.”
오늘도 담양의 대숲은 바람에 흔들리고, 장인의 공방에서는 대나무 결이 살아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의 하루는 전통을 지키면서도, 미래를 향해 새로운 무늬를 엮어가는 과정이다.

 

마무리

죽세공은 단순히 과거의 생활 도구를 만드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온 지혜의 산물이다. 박 장인의 하루는 여전히 대숲의 바람과 함께 시작되고, 그 바람은 작품 속에 고스란히 담겨 세상으로 퍼져나간다. 빠르고 편리한 것에 익숙해진 현대 사회에서, 그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대나무 무늬는 ‘느림의 가치’를 다시 일깨워준다.

오늘날 죽세공은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접점에 서 있다. 젊은 세대가 그의 바구니를 카페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하거나, 외국 관광객이 기념품으로 사가는 순간, 죽세공은 단순한 공예를 넘어 문화적 다리가 된다. 그리고 이 다리를 잇는 주인공이 바로 장인이다.

우리가 장인의 하루를 기록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의 기술을 소개하기 위함이 아니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 속에서, 잊혀져가는 가치들을 다시 발견하고, 그것이 우리 삶을 어떻게 풍요롭게 만드는지를 알리기 위함이다. 담양 죽세공 장인의 이야기는 결국, ‘지속 가능한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