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의 새벽 바다는 언제나 분주하다. 부두에는 갓 잡아 올린 대게를 실은 어선이 줄지어 들어오고, 시장에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메아리친다. 대게 하면 흔히 화려한 식탁 위의 별미를 떠올리지만,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있다. 바로 어망 수선 장인들이다. 낡고 찢어진 그물은 바다 위에서 치명적이다. 어부들이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그리고 지속 가능한 어업을 가능하게 하도록 묵묵히 바느질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65세의 장인 김종필(가명) 씨는 40년 넘게 그물을 꿰매며 바다와 함께 살아온 인물이다.

바늘과 실로 시작되는 장인의 하루
김 장인의 하루는 새벽녘 부두의 창고에서 시작된다. 어부들이 들고 온 낡은 어망은 크기만 해도 수십 미터. 곳곳에 찢긴 흔적과 끊어진 매듭들이 바다의 거친 흔적을 증명한다. 그는 커다란 바늘 모양의 ‘망침’에 굵은 나일론 실을 감아 들고, 손끝으로 찢어진 부분을 짚어낸다. “그물은 작은 구멍 하나가 큰 손실로 이어집니다. 바다에서 고기가 다 빠져나가 버리면 그날 조업은 허탕이지요.”
김 장인은 매듭을 새로 짓고, 실의 장력을 균형 있게 맞추며 그물을 다시 살려낸다. 어부들이 잠시 쉬는 동안, 그의 손은 쉼 없이 바늘을 움직인다.
장인의 하루는 기술보다 중요한 인내이다
그물 수선은 단순히 구멍을 메우는 작업이 아니다. 균형 잡힌 매듭, 일정한 간격, 당김의 강약까지 모두 신경 써야 한다.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다시 찢어지거나, 물살을 받으며 휘어져 고기를 제대로 잡지 못한다. “어망은 바다 위의 집입니다. 허술하게 지으면 고기는 다 도망가고, 어부는 손해를 보지요.”
김 장인은 하루 종일 바닥에 펼쳐진 거대한 그물 위를 오가며 바느질을 이어간다. 허리가 굽고 무릎이 시려도 그는 불평하지 않는다. “그물을 고치는 일은 바다와 어부들을 지키는 일”이라는 소신이 있기 때문이다.
바다와 함께 늙어가는 삶이 장인의 하루이다
김 장인은 젊은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이 기술을 배웠다. 처음에는 힘들고 지루하게만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이 일이 바다와 이어지는 끈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부들이 새 그물을 사려면 큰돈이 듭니다. 하지만 수선하면 몇 년은 더 쓸 수 있지요. 내가 꿰맨 그물로 고기를 가득 잡아 돌아올 때, 그 기쁨은 나의 보람입니다.”
요즘은 기계로 제작된 그물과 값싼 수입 어망이 보급되면서, 그의 기술을 배우려는 젊은이는 줄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어부들은 중요한 순간마다 김 장인을 찾는다. 바다에서 하루라도 버티기 위해선 그의 손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장인의 하루엔 사라지지 않아야 할 손길이 있다
그는 요즘 지역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어망 수선 체험을 가르치고 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낯설어하지만, 직접 매듭을 지어보며 바다와 어부들의 삶을 이해한다. 김 장인은 이 일이 단순한 수선 기술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어업을 지키는 기술이라고 강조한다. “그물이 없다면 대게도, 생선도, 어부의 삶도 없습니다. 결국 이 일은 바다를 살리는 일이지요.”
그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난 그물은 오늘도 바다로 나가 어부들과 함께 한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김 장인의 묵묵한 바느질은 포항의 바다를 지탱하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포항 대게 어망 수선 장인 김종필, 바다와 어부의 삶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손길. 그의 하루를 따라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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