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이천은 예로부터 ‘도자의 고향’이라 불려 왔다. 고려청자, 조선백자의 명맥을 이어온 이 땅에서는 오늘도 흙과 불을 다루는 장인들이 묵묵히 도자기를 빚어낸다. 그중에서도 72세의 도자기 장인 최성호(가명) 씨는 반세기 동안 물레를 돌려온 인물이다. 그의 공방에는 유약 냄새와 장작 타는 소리, 그리고 흙이 살아 숨 쉬는 기운이 가득하다. “도자기는 흙이 말하는 소리를 듣는 일입니다. 그 소리를 놓치면 그릇은 쉽게 깨지지요.”라는 그의 말은 단순한 도예 기술을 넘어 삶의 철학처럼 다가온다.

흙을 다듬는 첫 단계, 장인의 하루의 시작이다
도자기의 하루는 흙을 고르는 일에서 시작된다. 최 장인은 흙더미를 손끝으로 만져보며 점성과 촉감을 확인한다. “흙이 너무 부드러우면 모양이 흐트러지고, 너무 거칠면 깨지기 쉽습니다. 좋은 흙은 적당히 단단하면서도 유연해야 합니다.”
그는 흙을 고운 채로 걸러 불순물을 제거하고, 반죽하듯 발로 밟으며 매끄럽게 만든다. 이 과정을 ‘토련’이라 하는데, 흙이 숨결을 고르게 하기 위한 중요한 단계다. 흙을 다듬는 동안 그의 이마에는 땀이 맺히지만, 손끝에서는 고요한 기운이 흐른다.
장인의 하루는 물레 위에서 태어나는 형상이다
흙이 준비되면 본격적으로 물레 위에 올려놓는다. 장인의 손길에 따라 흙덩이는 서서히 항아리, 찻잔, 접시 등 다양한 모양으로 변한다. 그는 물레가 돌아가는 속도와 손의 압력을 정교하게 조절하며 한 치의 흐트러짐도 허락하지 않는다. “도자기는 욕심을 부리면 무너집니다. 손끝에서 마음이 흔들리면 그대로 티가 나지요.”
물레 위에서 도자기의 형태가 완성되면 며칠 동안 그늘에 말려야 한다. 급하게 건조하면 금이 가거나 터지기 때문이다. 흙이 비로소 그릇의 모습을 갖추어 가는 순간, 그는 마치 사람을 길러내는 듯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불 속에서의 시험인 장인의 하루
도자기의 운명을 결정짓는 순간은 가마에 들어가는 시간이다. 최 장인은 전통 장작가마를 고집한다. 장작을 불 속에 넣어 화력을 높이며, 불길의 세기를 눈과 귀로 느끼며 조절한다. “불은 제멋대로입니다. 불을 다스리려 하지 말고, 그 흐름을 읽어야만 좋은 색이 나옵니다.”
가마 속에서는 1,200도 이상의 고온에서 유약이 녹아내리며 도자기에 빛깔을 입힌다. 파란빛이 감도는 청자, 우아한 백자, 거친 듯 담백한 분청사기까지, 모두 불의 성격과 우연의 조화에서 탄생한다. 그는 가마 앞에서 밤새 불을 지키며 불꽃과 대화를 나눈다.
장인의 하루는 도자기의 오늘과 내일이다
완성된 도자기는 단순한 그릇이 아니다. 밥을 담아내는 그릇에도 장인의 철학과 혼이 깃들어 있다. “사람은 그릇을 쓰며 살고, 그릇은 사람의 손을 타며 나이 듭니다. 도자기는 결국 사람의 삶과 함께 늙어가는 존재지요.”
하지만 현대에는 값싼 공산품 그릇이 넘쳐나 전통 도자기의 설 자리가 좁아졌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흙과 불을 붙들고 있다. 최근에는 젊은 세대와 협업해 도자기를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재해석하며 새로운 길을 찾고 있다. “전통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겁니다. 흙과 불은 언제나 답을 주지요.”
그의 하루는 흙을 만지고 불을 지키며 흘러간다. 그리고 그 그릇들은 우리의 삶 속에서 여전히 따뜻한 자리를 지켜주고 있다.
이천 도자기 장인 최성호, 흙과 불로 빚어낸 전통 도자기의 세계와 그의 장인 정신을 따라가다.
'장인의 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장인의 하루 동네 숨은 고수 인터뷰 중 전주 비단 직조 장인 – 천년의 빛을 짜내는 손끝 (0) | 2025.09.04 |
|---|---|
| 장인의 하루 동네 숨은 고수 인터뷰 중 포항 대게 어망 수선 장인 – 바다를 지탱하는 숨은 손길 (0) | 2025.09.03 |
| 장인의 하루 동네 숨은 고수 인터뷰 중 남해 소금 장인 – 바다에서 하얀 보물을 건져 올리다 (1) | 2025.09.01 |
| 장인의 하루 동네 숨은 고수 인터뷰 중 부산 수제 어묵 장인 – 바다와 불이 빚어낸 손맛 (1) | 2025.08.31 |
| 장인의 하루 동네 숨은 고수 인터뷰 중 안동 목조 한옥 수리 장인 – 집에 깃든 숨결을 이어가다 (1) | 2025.0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