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단오제는 해마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 강릉을 가득 메우는 흥과 웃음의 축제다. 단오제의 무대 위에서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화려한 의상이나 춤사위만이 아니다. 바로 배우들이 얼굴에 쓰는 ‘탈’이다. 탈은 단순한 가면을 넘어, 한국인의 삶과 희로애락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얼굴이다. 강릉의 한 작업실에서 만난 이상우(가명, 66세) 장인은 40년 넘게 탈을 제작해 온 장인이다. 그는 매일같이 나무와 대화하며, 나무속에 숨어 있는 얼굴을 찾아내고 있었다.

그의 하루는 단순히 조각이 아니라,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는 의식에 가까웠다.
장인의 하루 탈의 시작은 숲에서부터이다
아침 햇살이 산을 비출 무렵, 장인은 자주 숲을 찾는다. 탈 제작에 가장 많이 쓰이는 나무는 오동나무다. 가볍고 질기며 쉽게 갈라지지 않아 탈 제작에 제격이기 때문이다. 장인은 나무를 고르면서 그 결을 만져보고, 습기와 탄력을 살핀다. “나무는 그 자체로 살아 있습니다. 어떤 나무는 웃는 얼굴을 품고 있고, 어떤 나무는 분노한 얼굴을 품고 있지요.” 숲에서 잘려 나온 나무는 그의 손에 들어오면 몇 달 동안 말리기를 거친다. 단순히 재료를 준비하는 시간이 아니라, 탈의 성격을 숙성시키는 시간이다. 장인은 “성급하게 나무를 깎으면 탈도 금세 생명을 잃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장인의 하루는 얼굴을 찾아내는 시간이다
말린 나무가 공방에 들어오면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된다. 그는 나무에 끌을 대며 얼굴을 찾아낸다. 처음에는 거친 표정이지만, 차츰 눈과 코, 입이 선명해진다. “탈은 단순한 조각이 아닙니다. 사람의 내면을 꺼내는 작업이지요.” 그의 손길에서 웃는 탈, 울부짖는 탈, 분노한 탈이 차례로 태어난다. 작업실에는 미완성의 탈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는데, 마치 아직 말을 걸지 못한 인물들이 줄지어 앉아 있는 듯한 풍경이었다.
그는 탈의 눈을 파낼 때 가장 긴장된다고 했다. “눈은 혼이 들어가는 자리입니다. 눈만 잘못 깎아도 그 탈은 죽은 얼굴이 되죠.” 수십 번의 칼질과 다듬기를 거쳐 마침내 탈은 완전한 얼굴을 갖추게 된다.
축제와 함께 살아 숨 쉬는 탈이 있는 장인의 하루
강릉 단오제가 열리면 그의 탈은 배우들의 얼굴에 올려진다. 무대 위에서 탈을 쓴 배우는 권력을 풍자하고, 서민의 고통을 웃음으로 승화시킨다. 관객들은 탈을 통해 현실을 비추는 거울을 마주하게 된다. “탈은 연극의 소품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웃기는 주인공이지요.” 장인은 자부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관객들이 떠난 빈 무대에서 배우들이 벗어 놓은 탈은 다시 공방으로 돌아온다. 탈은 단순히 나무에 불과하지만, 무대 위에서 사람들과 호흡하고 다시 돌아오면 또 다른 생명을 얻는다. 장인은 그 탈들을 닦아내며, 마치 오래된 친구와 대화를 나누듯 다정한 손길을 보냈다.
전통을 잇는 목소리가 담겨 있는 장인의 하루
오늘날 탈 제작을 배우려는 이는 많지 않다. 현대 사회에서 나무를 깎아 탈을 만드는 일은 번거롭고 경제적으로도 큰 이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인은 자신이 배운 기술을 후대에 반드시 전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는 매주 학생들을 모아 탈 제작 과정을 직접 가르친다. “탈은 단순한 예술품이 아닙니다. 우리 조상의 웃음과 울음을 담은 얼굴이니까요.”
그는 꿈이 있다고 했다. 언젠가 강릉 단오제의 한쪽에 작은 ‘탈 박물관’을 세우는 것이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직접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탈은 사람의 마음을 드러내는 거울입니다. 그 거울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비춰야 합니다.” 그의 하루는 오늘도 나무와 대화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강릉 단오제 탈 장인 이상우, 오동나무에 생명을 불어넣어 웃음과 풍자를 새기는 전통 탈 제작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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