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깊어갈수록 대나무 숲은 더 고요해지고, 바람이 불면 서로의 몸을 부딪치며 청아한 소리를 낸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대나무는 단순한 식물에 불과하지만, 어떤 이들에게 대나무는 곧 삶의 재료이자 예술의 원천이다. 충청도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평생을 대나무와 함께 살아온 박재윤(가명, 72세) 장인은 손끝으로 대나무를 쪼개고 엮으며 수십 년간 일상의 도구와 예술 작품을 만들어왔다. 그의 공방에는 바구니, 소쿠리, 차판, 발, 심지어 조명 갓까지 대나무로 만든 다양한 생활 용품이 가득하다. 박 장인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한다.

“대나무는 사람처럼 살아 있어요. 결이 있고, 호흡이 있죠. 억지로 다루면 금방 부러지지만, 결을 따라가면 제 손길에 순응합니다. 그래서 저는 늘 대나무의 목소리를 먼저 듣습니다.”
대나무와의 첫 만남, 재료가 곧 스승인 장인의 하루
박 장인의 하루는 새벽 대나무밭에서 시작된다. 그는 대나무를 직접 베어 공방으로 가져온다. 대나무는 자라는 속도가 빠르지만, 죽공예에 적합한 재료를 고르려면 최소 3년 이상 자란 것이 필요하다. 나이테와 결을 살펴보고, 두께가 고르고 탄력이 있는 대나무만 선별한다.
그는 베어온 대나무를 일정 길이로 자른 뒤, 칼로 곱게 쪼갠다. 이때 결이 틀어지면 재료는 바로 쓸모없어진다. “대나무는 거짓말을 안 합니다. 조금이라도 무리하면 금세 쩍 하고 갈라져 버려요.” 박 장인은 마치 제자에게 조언하듯 대나무와 대화하듯 일한다. 그 과정 자체가 수십 년 동안 몸에 밴 훈련이자 수행이다.
장인의 하루는 손끝에서 탄생하는 생활의 예술이다
죽공예는 단순히 재료를 자르고 엮는 과정이 아니다. 얇게 쪼갠 대나무를 하나하나 교차시켜 바구니를 엮는 순간은 마치 직조(織造)를 하는 듯 정교하다. 바구니의 바닥을 짜는 데만도 꼬박 하루가 걸린다. 그 위에 벽을 세우듯 층층이 대나무를 올려야 비로소 형태가 잡힌다.
그는 “바구니 하나에도 사람의 삶이 담겨 있습니다. 곡식을 담고, 빨래를 담고, 때로는 아이를 눕히기도 했죠. 그래서 저는 바구니를 만들 때마다 ‘이 바구니가 어떤 삶을 함께할까’ 생각하며 엮습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손끝에서 태어난 작품은 단순히 쓰임새 있는 물건을 넘어, 세월의 정성과 사람의 온기를 품은 작은 예술품이었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지켜온 전통을 이어가는 장인의 하루
플라스틱 바구니가 값싸게 쏟아져 나오면서 죽공예의 자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많은 장인들이 생활고로 인해 공방 문을 닫았고, 전통 기술은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박 장인은 끝까지 대나무를 놓지 않았다. 그는 지역 축제에서 체험 부스를 열어 아이들과 젊은 세대에게 죽공예를 직접 가르쳤다. 대나무를 만져본 아이들은 처음에는 힘들어하다가도, 자신이 직접 엮어낸 작은 소쿠리를 보고는 눈을 반짝인다.
“대나무가 이렇게 단단하면서도 부드럽다는 걸 처음 알았다는 아이들의 말이 참 기뻐요. 그 순간 이 기술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다시금 강해집니다.” 그는 전통을 지킨다는 자부심 하나로 수십 년의 세월을 버텨왔다.
장인의 하루는 대나무로 이어가는 미래 담겨 있다
박 장인은 요즘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전통적인 바구니나 소쿠리 외에도 현대 인테리어에 어울리는 조명, 가구, 소품을 제작한다. 해외 전시회에 참가하기도 했고, 온라인으로 그의 작품을 찾는 젊은 층도 늘고 있다. “죽공예가 옛날 물건에 머물러선 안 됩니다. 오늘날의 삶 속에서 다시 쓰임새를 찾아야 하죠.”
그의 공방은 여전히 대나무 향으로 가득하다.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소리처럼, 그의 작품은 세대를 넘어 사람들의 삶 속으로 스며든다. 대나무의 생명력은 그 자체로 한국인의 끈기와 유연함을 닮아 있었다.
충청도의 작은 마을, 50년을 대나무와 함께한 박재윤 장인. 죽공예를 통해 생활의 예술을 만들고, 전통과 현대를 잇는 삶의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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