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의 한 골목에는 시간이 멈춘 듯한 전통 화원이 자리하고 있다. 거리에는 현대식 꽃집이 즐비하지만, 이곳은 그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화려한 꽃다발 대신 단정한 백합 한 송이, 소박한 국화와 대나무가 어우러진 꽃꽂이가 주인공이다. 김도현(가명, 74세) 장인은 이 화원을 40년 넘게 지켜온 주인이다. 그는 “꽃은 단순히 장식이 아닙니다. 그 속에는 계절과 인간의 마음이 함께 담기지요”라며 꽃을 다루는 철학을 들려주었다. 그의 하루는 꽃을 만지는 일에서 시작해 꽃으로 마무리된다. 김 장인의 삶을 들여다보면, 꽃은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하나의 언어이며 예술이었다.

새벽 시장에서 시작되는 장인의 하루
김 장인의 하루는 새벽 인사동 꽃시장에서 시작된다. 수십 년간 다녀온 시장이라 상인들과는 눈빛만 봐도 어떤 꽃이 필요한지 안다. 그는 계절마다 달라지는 꽃의 향기를 맡으며 그날의 재료를 고른다. 봄에는 매화와 목련, 여름에는 연꽃과 봉선화, 가을에는 국화와 코스모스, 겨울에는 동백과 매화를 들여온다. “꽃은 계절의 얼굴입니다. 계절이 바뀌면 꽃의 빛깔과 향기도 바뀌지요. 그걸 먼저 알아야 좋은 꽃꽂이가 나옵니다.”
화원으로 돌아온 그는 구입한 꽃들을 하나하나 다듬는다. 불필요한 잎을 떼고, 줄기의 물을 새롭게 갈아주며, 꽃들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을 만들어준다. 꽃을 단순히 상품이 아닌 생명으로 대하는 태도였다.
장인의 하루는 꽃꽂이에 담긴 철학이 있다
전통 화원의 꽃꽂이는 서양식 꽃다발과 다르다. 무조건 화려하게 꽉 채우는 대신, 빈 공간과 여백을 살려 꽃 하나하나의 선을 강조한다. 김 장인은 이를 “여백의 미학”이라고 부른다. “꽃은 자기 자리를 알고 있습니다. 억지로 많이 꽂을 필요가 없어요. 한 송이만으로도 충분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의 손길에서 만들어진 꽃꽂이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이야기를 담는다. 예를 들어 장례식장에는 백합과 국화를 주로 쓰는데, 이는 슬픔 속에서도 고결함과 평안을 기원하는 의미를 가진다. 혼례에는 붉은 동백과 흰 매화를 섞어 넣어 부부의 화합을 상징한다. 꽃의 조합 하나하나에 오랜 세월 전해 내려온 의미가 스며 있는 것이다.
꽃과 사람을 이어주는 다리가 장인의 하루이다
김 장인의 화원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온다. 전통 혼례를 준비하는 신부, 사찰의 법회를 위해 꽃을 구하는 스님, 소박한 제례상을 준비하는 이웃 주민까지, 모두 그에게 꽃을 부탁한다. 그는 손님이 전하는 상황과 마음을 먼저 듣고, 그에 맞는 꽃을 고른다. “사람의 마음은 다 다르지만, 꽃은 그 마음을 잇는 다리가 됩니다.”
어느 날, 병원에 있는 어머니에게 줄 꽃을 사러 온 젊은 청년이 있었다. 김 장인은 오래 고민하다 흰 백합 대신 연분홍 철쭉을 권했다.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백합은 장엄하지만 무겁습니다. 지금 필요한 건 가볍고 따뜻한 위로일 겁니다.” 청년은 눈시울이 붉어져 꽃을 안고 갔다. 꽃은 그저 장식이 아니라 위로와 공감의 언어였다.
장인의 하루는 전통 화원의 오늘과 내일이 있다
현대의 꽃 시장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온라인 주문과 대형 꽃 체인점이 등장하면서, 소박한 전통 화원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김 장인은 여전히 작은 화원을 지키며 후학들에게 전통 꽃꽂이의 정신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꽃은 트렌드를 따르는 상품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과 자연의 조화를 담은 문화”라고 강조한다.
요즘 그는 젊은 세대와 함께 전통 꽃꽂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실험도 하고 있다. 카페와 전시 공간에 전통 꽃꽂이를 설치하거나, 소셜 미디어에 꽃꽂이 과정을 공유하며 새로운 관객과 소통하는 것이다. “꽃은 시대를 뛰어넘습니다. 중요한 건 꽃을 대하는 마음이죠.” 그의 하루는 오늘도 꽃과 함께 흐르고, 그 꽃은 다시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하며 세상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서울 전통 화원 장인 김도현, 꽃꽂이에 혼을 담아 계절과 사람의 마음을 잇는 그의 하루를 따라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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