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의 하루

장인의 하루 동네 숨은 고수 인터뷰 중 하늘과 땅을 잇는 실, 전통 연 제작 장인의 하루

goomio1 2025. 8. 25. 07:27

겨울바람이 세차게 부는 들판 위, 하늘에 색색의 연이 수놓아진 광경은 이제는 드문 풍경이 되었다. 스마트폰과 게임에 익숙한 아이들은 더 이상 연을 직접 만들거나 날리는 경험이 없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여전히 전통 연을 만들며 하늘과 소통하는 장인이 있다. 충청도의 작은 마을에서 평생 연 제작에 몰두해 온 박재성(가명, 74세) 장인. 그의 공방에는 대형 방패연, 가오리연, 방패문양이 그려진 전통 연들 이 빼곡히 걸려 있다.

전통 연 장인의 하루

그는 말한다. “연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에요. 바람을 읽고, 마음을 하늘에 띄우는 의식 같은 거죠.” 박 장인의 하루는 얇은 한지와 대나무를 마주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장인의 하루는 대나무와 한지, 연의 뼈대를 세우며 시작한다

연을 만드는 첫 과정은 대나무를 고르는 일이다. 박 장인은 대나무를 손끝으로 튕겨보며 강도와 탄력을 확인한다. 지나치게 부드러우면 바람에 휘어지고, 너무 단단하면 꺾이기 쉽다. 적당한 탄성을 가진 대나무를 고른 후, 칼로 얇게 쪼개어 뼈대를 만든다.
그는 “대나무는 연의 척추와 같다”고 설명한다. 뼈대가 곧으면 연이 하늘에서 안정적으로 뜨고, 조금이라도 비틀리면 곧장 추락한다. 뼈대를 세운 뒤에는 곱게 풀 먹인 한지를 덧대고, 손으로 주름을 매끈히 펴낸다. 이 과정은 단순히 기술이 아니라, 종이와 대나무의 호흡을 맞추는 일에 가깝다. “연은 재료와 싸우면 절대 날지 않습니다. 함께 숨 쉬어야 하죠.”

 

색과 문양, 하늘에 띄우는 이야기가 담긴 장인의 하루

연 제작에서 또 하나 중요한 과정은 문양을 그리는 일이다. 박 장인의 공방 한쪽에는 전통 물감과 붓이 놓여 있었다. 그는 붓을 들어 연 위에 붉은 태양, 푸른 용, 검은 학 등을 그려 넣는다. 이 문양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소망과 기원의 상징이다.
어릴 적, 마을에서는 정월 대보름마다 아이들이 자신만의 연을 들고 들판에 모였다. 그때 아이들은 각자의 소원을 연 위에 적었다. 병이 낫기를 바라는 아이, 시험에 합격하길 바라는 학생, 풍년을 기원하는 농부까지. 연이 하늘로 높이 오를수록 그들의 마음도 함께 올라간다고 믿었다. 박 장인은 그 기억을 떠올리며 오늘도 붓끝에 소망을 담는다.

 

장인의 하루 바람과 함께하는 날, 연의 비행이 시작된다

연 제작은 공방에서 끝나지 않는다. 완성된 연이 제 역할을 하는 순간은 바람을 타고 날아오를 때다. 박 장인은 종종 아이들과 함께 들판에 나가 완성된 연을 띄운다. 그는 먼저 실의 길이를 조정하고, 바람의 방향을 살핀 뒤, 힘차게 연을 던져 올린다. 연이 하늘에 오르는 순간, 아이들의 눈은 빛나고 웃음소리가 들판에 울려 퍼진다.
그는 말한다. “연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아요. 바람과 호흡해야 하고, 타이밍을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연을 날리면 아이들도 자연스레 집중하고 인내를 배우게 되죠.” 실제로 그와 함께 연을 날린 아이들 중 몇 명은 다시 공방을 찾아와 연 만들기를 배우기도 한다. 장인은 그때마다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사라져 가는 놀이, 이어지는 전통이 장인의 하루이다

현대 사회에서 연은 점점 사라져 가는 전통 놀이가 되었다. 하지만 박 장인은 여전히 연이 가진 가치를 굳게 믿는다. 그는 지역 문화센터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연 만들기 수업을 열고, 방학마다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덕분에 아이들은 자신이 만든 연이 하늘로 오르는 경험을 통해 전통 놀이의 즐거움을 새롭게 느낀다.
“연은 단순한 장난감이 아닙니다. 가족과 이웃이 함께 시간을 나누고, 바람을 느끼며 자연과 교감하는 문화였죠.” 박 장인은 그렇게 잊혀가는 연의 전통을 오늘도 이어가고 있었다. 그의 손끝에서 태어난 연들은 더 이상 단순한 놀이 도구가 아니라,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하늘의 다리가 되고 있다.


전통 연 제작 50년, 박재성 장인의 하루. 대나무와 한지로 빚어낸 연이 하늘로 날아오르며 전통과 아이들의 웃음을 잇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