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의 하루

장인의 하루 동네 숨은 고수 인터뷰 중 전통 나무 배 장인 – 바다를 품은 손길, 목선(木船)의 기술과 세계 조선술의 만남

goomio1 2025. 9. 21. 08:01

바다는 늘 인간에게 두려움과 동시에 희망의 공간이었다. 바다를 건너야 새로운 땅을 만날 수 있었고, 그 바다를 오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배가 필요했다. 한국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예로부터 배를 만드는 기술이 발달했는데, 그 중심에는 목선(木船)을 만드는 장인이 있었다. 오늘날에는 강철과 엔진으로 무장한 거대한 선박들이 바다를 누비지만, 불과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한국 어촌 곳곳에서는 장인들이 손수 깎아낸 나무배가 어부들의 삶을 지탱했다.

전라남도 완도의 작은 어촌 마을에서 만난 박태수(가명) 장인은 60년 가까이 나무 배를 만들어온 목선 장인이다. 그의 하루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무거운 나무를 다듬고, 그 위에 자신의 혼을 불어넣는 작업으로 채워진다. 나무를 다루는 그의 손끝은 단순히 한 척의 배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세월과 기술, 바다를 살아온 사람들의 기억을 함께 엮는 일이다.

 

전통 나무 배 장인의 하루

바닷바람과 함께 시작하는 장인의 하루

박 장인의 하루는 새벽의 바닷바람과 함께 시작된다. 그는 바닷가를 걸으며 오늘 다듬어야 할 나무를 떠올린다. 전통 목선을 만드는 데 쓰이는 주재료는 참나무와 소나무다. 소나무는 가볍고 물에 뜨는 성질이 있어 선체를 이루고, 참나무는 단단해 배의 골격을 튼튼히 한다.

“배는 단순히 물에 뜨는 나무 덩어리가 아닙니다. 파도를 이겨내야 하고, 수십 년을 써도 버틸 수 있어야 해요. 그러려면 나무의 성질을 잘 알아야 합니다.”

작업장에서는 먼저 거대한 통나무가 톱질되어 선체의 뼈대가 된다. 이어서 곡선으로 휘어야 하는 부분은 불에 달궈 천천히 구부린다. 이때 장인의 손끝 감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조금만 힘을 잘못 주어도 나무가 갈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박 장인은 “나무는 억지로 꺾는 게 아니라, 나무가 원래 가지고 있는 길을 따라가야 한다”라고 말한다.

 

장인의 하루는 목선의 지혜, 세월을 견디는 기술이 있다

나무 배는 단순히 ‘나무를 이어 붙인 구조물’이 아니다. 파도와 조류, 바람의 방향까지 고려한 세밀한 설계가 필요하다. 한국 전통 목선은 바다의 성격에 따라 조금씩 달랐다. 서해안은 물살이 세고 갯벌이 많아 밑바닥이 넓고 평평한 배가 필요했고, 남해안은 섬이 많아 기동성이 좋은 작은 배가 유리했다.

박 장인은 옛 선조들의 지혜를 그대로 이어간다. 그는 배의 바닥을 넓게 깎아내고, 옆면은 물살을 잘 가르도록 곡선을 살린다. 못질이나 접착제를 최소화하고, 나무와 나무를 맞춤처럼 끼워 맞추는 전통 기법을 고집한다. 그래서 그의 배는 20년, 30년이 지나도 물살을 타고 나아간다.

특히 그는 배를 완성한 뒤 마지막으로 배에 소금을 뿌려 정화하는 의식을 한다. 바다에 내놓는 순간부터 배는 단순한 물체가 아니라, 함께 생명을 나눌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세계 조선술과의 만남을 선도하는 장인의 하루

흥미로운 점은 한국 전통 목선이 세계 다른 나라의 목선과도 닮아 있으면서도, 동시에 뚜렷한 개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노르웨이의 바이킹 선박은 날렵한 선체로 대서양을 건넜고, 일본의 전통 목선은 작은 어업용으로 특화되었다. 한국의 목선은 이들에 비해 크지 않지만, 파도가 거센 서해와 다도해를 견뎌낼 수 있도록 안정감 있는 형태를 지녔다.

박 장인은 해외 전시에서 한국 목선을 소개하며 “우리 배는 작지만 바다와 가장 잘 어울리는 친구 같은 배”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최근에는 친환경 트렌드와 맞물려 전통 목선을 복원하거나 체험용 관광 상품으로 활용하는 움직임도 늘어나고 있다. 이는 한국 목선이 단순히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세계 친환경 조선술과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장인의 하루는 사라져 가는 기술, 이어야 할 유산이 있다

문제는 박 장인 같은 목선 장인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이다. 철선과 플라스틱 어선이 대체하면서, 나무배의 자리는 빠르게 사라졌다. 젊은 세대는 나무 냄새와 톱밥에 묻혀 하루 종일 땀 흘리는 작업을 외면한다. 박 장인은 “이제는 내 손이 멈추면, 이 기술도 멈추지 않을까 두렵다”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희망을 품는다. 최근 전통 목선이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복원 사업이 추진되고 있고, 해외 관광객들이 직접 전통 목선을 타보는 체험 프로그램도 늘어나고 있다. “배는 사람을 태우고, 삶을 실어 나르는 존재입니다. 이 기술이 끊기지 않고 이어지길 바랄 뿐입니다.”

 

마무리

박태수 장인의 하루는 톱과 망치, 불길 속에서 흘러가지만, 그의 배는 단순한 나무 조각이 아니다. 그것은 바다를 건너는 사람들의 꿈과 희망, 그리고 삶을 품은 문화다. 한국의 목선은 과거에 머무는 유물이 아니라, 세계 조선술의 역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앞으로도 의미를 이어갈 수 있는 자산이다.

나무배를 지키는 일은 단순한 전통 보존이 아니라, 인류가 바다를 건너온 기억을 잇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