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의 하루

장인의 하루 동네 숨은 고수 인터뷰 중 민화 장인 – 일상의 그림 속에 깃든 소망

goomio1 2025. 9. 17. 07:44

민화(民畵)는 ‘백성의 그림’이라는 이름을 가진 독특한 한국 전통 회화다. 궁중이나 양반가에서 화려하게 그려진 진채화(眞彩畵)와 달리, 민화는 서민들의 삶 속에서 태어나고 전해졌다. 그림 솜씨가 특별히 뛰어나지 않아도, 누구나 붓을 들어 자신의 소망과 기원을 담아냈다. 그래서 민화에는 호랑이가 우스꽝스럽게 웃기도 하고, 까치가 장난스럽게 앉아 있기도 하며, 책거리 속에는 배움에 대한 갈망이 채워져 있다.

오늘날 민화는 단순한 옛 그림이 아니다. 일상의 기원을 담은 생활 문화이자, 현대 예술과 결합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자산이다. 그 전통을 묵묵히 이어가는 이가 있다. 바로 35년째 민화를 그려온 박영선(가명) 장인이다. 그녀의 하루는 물감과 붓, 그리고 서민의 희로애락을 담은 상징들과 함께 흐른다.

 

일상의 그림 속에 깃든 민화 장인의 하루

장인의 하루는 새벽의 준비, 색을 빚는 손끝에서 시작된다

박 장인의 하루는 새벽 물감 갈기에서 시작된다. 요즘처럼 튜브 물감을 쓰지 않는다. 그녀는 여전히 전통 방식대로 석채(石彩)를 간다. 곱게 간 돌가루에 아교를 섞어 물감을 만든다. 석채를 손으로 갈 때 나는 사각사각한 소리는 고요한 새벽을 깨운다.

“색을 직접 빚어야 그림의 생명력이 달라요. 자연에서 나온 색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아요.”
그녀는 오방색(청, 적, 황, 백, 흑)을 기본으로, 계절과 주제에 맞는 색을 만들어낸다. 호랑이의 털빛에는 황토를, 책거리의 푸른 서책에는 쪽빛을 쓴다. 이렇게 빚어진 색은 단순히 시각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자연과 연결된 생명력을 담는다.

 

호랑이와 까치, 웃음 속의 지혜를 담는 장인의 하루

민화 속 가장 익숙한 장면은 단연 까치호랑이다. 호랑이는 위엄 있는 산군(山君)이 아니라, 눈이 휘둥그레지고 어딘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까치는 그 옆에서 쨍쨍 울며 장난을 친다. 이 그림에는 백성들의 해학이 담겨 있다. 권위 있는 존재를 두려움이 아니라 웃음으로 바라본 것이다.

박 장인은 까치호랑이를 그릴 때마다 미소를 짓는다. “그림을 보는 사람도 자연스레 웃게 돼요. 민화는 보는 이를 편안하게 하고, 삶을 긍정하게 만들어요.”
그녀가 붓끝으로 호랑이의 꼬리를 장난스럽게 말아 올리면, 그림 속 호랑이가 방 안을 가득 채우는 듯하다. 까치의 작은 발끝 하나에도 정성이 들어간다. 그렇게 완성된 그림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웃음 속에 담긴 지혜다.

 

장인의 하루는 생활 속 기원과 소망을 담고 있다

민화는 단순히 그리기 위한 그림이 아니다. 백성들은 그림에 삶의 기원을 담았다. 복숭아와 석류는 다산과 풍요를, 물고기는 재물과 풍요를, 학과 소나무는 장수를 상징했다. 서책과 문방사우가 그려진 책거리는 자손들의 학업 성공을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박 장인은 민화를 그릴 때, 그림 속 상징을 설명해주곤 한다. 체험 교실에 온 아이들에게 “복숭아는 오래 살라는 뜻, 물고기는 돈이 넉넉하라는 뜻”이라고 이야기하면, 아이들은 금세 그림 속 의미를 이해한다. “민화는 언어가 아니라 상징으로 소통하는 그림이에요. 그래서 세대를 넘어 공감할 수 있죠.”

그녀는 민화가 오늘날에도 충분히 쓰일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젊은 디자이너들과 협업해 민화 문양을 패브릭, 핸드폰 케이스, 심지어 카페 인테리어 벽화로도 활용하고 있다. “민화는 생활 속에서 살아야 해요. 박물관 속에만 있으면 죽은 그림이 됩니다.”

 

세계로 나아가는 민화 장인의 하루

민화는 이미 해외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단순하면서도 상징이 풍부하고, 무엇보다 색감이 강렬하다. 해외 전시에서 박 장인의 민화는 늘 큰 반응을 얻는다. 외국인들은 특히 까치호랑이를 보고 웃음을 터뜨리며, 그림 속 해학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인다. “언어가 달라도 웃음은 통하더라고요. 민화는 그 힘이 있어요.”

박 장인은 민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도 한다. 민화 기법을 활용해 추상화 같은 대형 작품을 제작하거나, 디지털 아트와 결합해 NFT로 선보이기도 했다. “전통은 멈추는 게 아니라 흐르는 거예요. 민화는 예전에도 서민들의 삶 속에서 함께했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야 해요.”

 

마무리

박영선 장인의 하루는 물감 빚는 소리에서 시작해, 해학과 소망을 담은 그림으로 이어진다. 그녀의 민화는 단순한 전통 그림이 아니라, 웃음과 기원이 담긴 삶의 예술이다.

 

민화를 잊지 않는 일은 단순히 과거의 미술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서민들의 삶과 꿈, 그리고 긍정의 힘을 오늘날에도 되살리는 일이다. 민화는 여전히 우리 곁에서 웃음을 건네고,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