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과(韓菓)는 단순히 달콤한 간식이 아니다. 그것은 수백 년을 이어온 우리의 생활 문화이자 의례의 상징이다. 명절이면 한과 상자가 빠지지 않았고, 혼례나 제례에도 반드시 올려졌다. 쌀, 꿀, 조청, 깨, 대추, 잣 등 자연의 재료로 빚어낸 한과는 계절의 흐름과 농사의 결실을 담은 음식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한과는 점점 낯선 존재가 되고 있다. 아이들은 초콜릿과 케이크를 더 친숙하게 여기고, 편의점 선반에서는 화려한 수입 과자가 자리 잡았다. 이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한과를 고집하며 세월의 맛을 이어온 이가 있다.

바로 정미선(가명) 장인이다. 그녀는 40년 넘게 한과를 빚으며, 사라져 가는 전통을 지켜내고 있다.
장인의 하루는 새벽 반죽에 담긴 마음이다
정 장인의 하루는 새벽 다섯 시, 어둠이 가시지 않은 시각에 시작된다. 커다란 놋쇠 그릇에 물에 불린 찹쌀을 올리고, 맷돌에 갈아낸다. 그 과정은 기계보다 손이 훨씬 느리지만, 그녀는 고집스럽게 손길을 택한다. “쌀이 숨을 쉬듯 살아 있어야 해요. 기계는 편하지만, 곱게 갈린 쌀에서 나오는 기운이 달라요.”
쌀가루 반죽은 온도와 습도에 따라 달라진다. 그녀는 손끝으로 반죽의 질감을 살피며, 오늘의 기운을 읽는다. 손바닥에 닿는 촉감, 기온에 따라 달라지는 반죽의 탄력은 수십 년의 감각이 아니면 구별하기 어렵다. 그렇게 완성된 반죽은 작은 덩어리로 나눠져 기름에 들어갈 순간을 기다린다.
기름 위에 피어나는 꽃, 유과로 완성되는 장인의 하루
한과의 꽃은 단연 유과다. 기름 속에 들어간 반죽이 서서히 부풀어 오르는 순간, 작은 꽃잎이 피어나는 듯하다. 정 장인은 그 장면을 보며 늘 미소를 짓는다. “아이들이 처음 유과가 부풀어 오르는 걸 보면, 꼭 마술 같다고 해요. 그게 제가 한과를 놓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예요.”
부풀어 오른 유과는 조청 속으로 들어간다. 진득한 꿀 향기가 퍼지고, 깨와 잣, 콩고물이 더해진다.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굴려내야만 고르게 묻는다. 조금만 서두르면 조청이 흘러내리고, 모양이 흐트러진다. 그녀의 움직임은 마치 춤을 추듯 부드럽다. 유과는 단순한 과자가 아니라, 정성과 기다림이 만든 시간의 결정체였다.
명절의 추억과 사라져가는 자리를 지키는 장인의 하루
정 장인은 종종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명절이면 어머니가 한과를 만들고, 아이들은 옆에서 콩고물을 묻히며 장난을 쳤다. 그때의 달콤함은 단순한 맛이 아니라 가족의 온기였다. 하지만 요즘 명절 음식상에서 한과는 점점 빠져간다. 대신 케이크, 초콜릿, 수입 과자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녀는 안타까움을 감추지 않는다. “한과를 먹어본 적 없는 아이들이 늘고 있어요. 한과는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우리 삶의 기록이에요.” 그래서 그녀는 지역 학교와 체험장을 돌며 아이들과 함께 한과를 만든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귀찮아하다가, 반죽이 부풀어 오르는 순간 환호성을 지른다. 그 순간, 그녀는 희망을 본다.
세계로 나아가는 한과로 장인의 하루는 다시 시작된다
정 장인은 한과를 단순히 과거의 음식으로 두지 않는다. 그는 한과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세계로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 있다. 작은 패키지에 담아 간식처럼 즐기기 쉽게 만들고, 초콜릿이나 녹차와 결합한 퓨전 한과를 선보인다. 해외 전시에서는 한과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다. “외국인들은 ‘이건 너무 예쁘다, 예술 작품 같다’고 말하곤 해요. 실제로 먹어보면 쌀의 고소함과 꿀의 단맛에 놀랍니다.”
그녀는 한과가 K-디저트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믿는다. K-팝과 K-드라마가 세계를 사로잡은 것처럼, 한과도 한국의 맛과 미학을 전할 수 있다. 전통을 지키되, 현대적으로 응용할 때 비로소 한과는 다시 살아난다고 그녀는 말한다.
마무리
정미선 장인의 하루는 반죽과 기름 냄새 속에서 시작해, 달콤한 미소로 끝난다. 그녀의 손끝에서 태어난 한과는 단순한 과자가 아니다. 그것은 계절과 가족, 공동체의 의미가 담긴 문화다.
한과를 잊지 않는 일은 곧 우리의 뿌리를 기억하는 일이다. 오늘날의 한과는 단순히 옛 간식이 아니라, 한국인의 삶과 미학을 담은 세계적인 디저트로 성장할 수 있다.
'장인의 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장인의 하루 동네 숨은 고수 인터뷰 중 전통 종이발 장인 – 빛과 그림자를 엮는 손끝 (1) | 2025.09.18 |
|---|---|
| 장인의 하루 동네 숨은 고수 인터뷰 중 민화 장인 – 일상의 그림 속에 깃든 소망 (1) | 2025.09.17 |
| 장인의 하루 동네 숨은 고수 인터뷰 중 매듭 공예 장인 – 실과 마음을 엮어내는 손끝 (0) | 2025.09.15 |
| 장인의 하루 동네 숨은 고수 인터뷰 중 제주 옹기 장인 – 화산의 흙으로 빚은 숨 쉬는 그릇 (0) | 2025.09.14 |
| 장인의 하루 동네 숨은 고수 인터뷰 중 담양 죽세공 장인 – 대나무 숲에서 피어난 삶의 예술 (1) | 2025.09.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