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의 하루

장인의 하루 동네 숨은 고수 인터뷰 중 일본 칠기 장인 – 옻칠에 담긴 자연의 시간

goomio1 2025. 10. 4. 07:40

나무에 옻칠을 하면 그것은 단순한 목재가 아니라 수백 년을 버티는 예술품이 된다. 일본의 전통 칠기(漆器)는 그 자체로 자연과 인간의 협업이며, 오랜 시간이 만든 빛을 품은 생활의 예술이다. 반짝이는 붉은 칠기 그릇, 검은 옻칠의 깊은 광택, 그리고 금가루로 장식한 마키에(蒔絵)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일본인의 심미안을 대표한다.

하지만 옻칠은 그 과정이 매우 까다롭고 손이 많이 간다. 옻나무에서 채취한 수액은 독성을 지니고 있어 작업자가 피부에 닿으면 심한 알레르기를 일으킨다. 또 칠이 제대로 건조되려면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야 하며, 한 번 칠하고 말리는 과정을 수십 번 반복해야만 원하는 광택과 내구성이 나온다.

일본 옻칠인 칠기 장인의 하루

오늘은 이 복잡하고 고된 과정을 평생의 길로 삼은 니시무라 아키라(가명) 장인의 하루를 따라가 본다. 그의 공방에서 태어난 칠기 한 점은 단순히 그릇이 아니라, 시간과 인내, 자연의 호흡을 담아낸 작품이다.

 

옻나무의 눈물, 재료를 얻는 여정으로 장인의 하루는 시작된다

칠기의 시작은 옻나무다. 여름이면 장인은 숲으로 향한다. 나무에 조심스럽게 상처를 내면 투명한 수액이 맺힌다. 이것이 바로 옻칠의 원료다. 하지만 나무 한 그루에서 얻을 수 있는 양은 아주 적다. 장인은 나무가 상처 입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쉬게 하며 수액을 모은다.

니시무라 장인은 이 과정을 “나무의 눈물을 빌리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옻나무가 준 수액은 맑고 끈적하지만, 바로 사용할 수는 없다. 이를 정제해 불순물을 걸러내야 하고, 계절과 날씨에 따라 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장인의 경험과 감각 없이는 결코 좋은 칠을 얻을 수 없다.

옻칠은 공예 재료임과 동시에 자연과 장인 사이의 약속이다. 무리하게 채취하면 나무는 죽고, 그 숲도 사라진다. 그래서 장인들은 늘 자연을 존중하며 필요한 만큼만 얻는다. 이 윤리적 태도가 곧 칠기의 생명력이다.

 

장인의 하루는 수십 번의 칠과 건조, 인내의 반복이다

공방에 돌아오면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된다. 나무로 만든 그릇 표면을 곱게 다듬은 뒤, 얇게 칠을 한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칠은 습한 공간에서 천천히 건조된다. 건조에는 며칠씩 걸리고, 이 과정을 다시 반복해야 한다.

장인은 최소 10번, 많게는 30번 이상 칠과 건조를 되풀이한다. 그 과정에서 표면은 점점 매끈해지고, 광택은 깊어진다. 니시무라 장인은 말한다.
“칠은 사람을 닮습니다. 성급하면 얼룩이 지고, 인내하면 빛이 납니다.”

이 인내의 결과물은 수백 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강도와 아름다움이다. 실제로 일본 사찰의 오래된 칠기 불상이나 가구들은 수백 년의 세월을 견디며 여전히 빛나고 있다.

 

마키에, 금빛으로 완성되는 예술로 장인의 하루는 완성된다

칠기 제작에서 가장 화려한 기술은 마키에다. 옻칠이 아직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금가루나 은가루를 뿌려 무늬를 새기는 기법이다. 빛을 받으면 금빛 문양이 은은하게 떠오르고, 그 속에서 칠기의 깊은 검정과 붉음이 함께 어우러진다.

니시무라 장인은 “마키에는 우주의 별빛을 그릇에 옮겨놓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의 공방에서 본 칠기 접시는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였다. 단순한 생활용품이 예술로 승화되는 순간이었다.

마키에는 일본 칠기의 세계적 명성을 높여왔다. 에도 시대에는 유럽으로 수출되며 귀족들이 애호했고, 지금도 일본 칠기는 세계 전시회와 경매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다. 하지만 그 화려함의 이면에는 장인의 손끝에서 수십 번 이어진 땀과 인내가 깃들어 있다.

 

장인의 하루는 사라질 위기와 현대적 부활로 고민한다

그러나 칠기 장인들의 길은 쉽지 않다. 현대 사회에서는 플라스틱과 금속, 값싼 공산품이 주류가 되면서 칠기의 수요는 급격히 줄었다. 게다가 옻칠 작업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가격이 높아 대중적 소비와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환경친화적 소재와 전통 수공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칠기는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일본 젊은 디자이너들은 칠기를 현대적 테이블웨어로 재해석하고, 해외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칠기 접시를 사용해 특별한 식문화를 연출한다.

니시무라 장인은 최근 뉴욕의 한 전시회에 참가했다. 그의 작품은 “시간을 먹는 그릇(Time-eating Bowl)”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고, 많은 이들이 그 깊은 빛에 감탄했다. 그는 말했다.
“옻칠은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자연과 시간이 만든 것이기에 전 세계 어디에서나 통할 수 있습니다.”

 

마무리

니시무라 장인의 하루는 나무와의 약속에서 시작해, 수십 번의 인내와 반복, 그리고 금빛 예술로 완성된다. 그의 칠기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시간을 담는 그릇이며, 자연과 인간이 함께 빚은 기적이다.

“장인의 하루”가 기록하는 옻칠 장인의 삶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얼마나 긴 시간을 견딜 준비가 되어 있는가? 급속히 소비되는 시대 속에서도, 천천히 완성되는 아름다움의 가치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