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전통 술, 사케(日本酒)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다. 그것은 일본인의 삶과 철학을 담은 문화의 결정체이며, 수백 년 동안 이어져온 장인의 손끝에서 빚어진 예술이다. 많은 이들이 사케의 맛을 양조 기술에서 찾지만, 사실 그 뒤에는 또 다른 장인의 세계가 숨겨져 있다. 바로 사케를 담아내는 전통 사케통(木桶, 키오케) 제작 장인들이다.
키오케는 단순히 술을 담는 나무 통이 아니다. 그 나무통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향과 숨결은 술의 맛을 바꾸고, 술에 살아있는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그러나 오늘날 스테인리스 탱크와 산업화된 양조 방식이 보편화되면서, 전통 나무통을 만드는 장인의 수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일본에서도 손으로 사케통을 제작할 수 있는 장인은 이제 전국에 몇 명 남지 않았다.

오늘은 일본 교토의 한 산골 마을에서 사케통 제작을 이어가고 있는 다나카 켄지(가명) 장인의 하루를 따라가 본다. 그의 손끝에서 태어나는 나무통은 단순한 술 저장 용기가 아니라, 일본 사케 문화의 뿌리를 지켜내는 살아있는 유산이다.
새벽의 산길, 나무와의 대화로 장인의 하루는 시작된다
다나카 장인의 하루는 새벽 산길에서 시작된다. 그는 매일 숲을 찾는다. 사케통 제작의 첫걸음은 나무를 고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주로 사용되는 나무는 삼나무(杉, 스기)와 편백나무(檜, 히노키)다. 이 나무들은 은은한 향을 품고 있으며, 술이 발효되는 동안 미묘하게 스며들어 술맛에 깊이를 더한다.
그는 나무 앞에서 오랜 시간 서성인다. “나무는 사람과 같습니다. 어떤 나무는 너무 급하고, 어떤 나무는 너무 약하죠. 술을 담으려면 인내와 안정이 있는 나무여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며 그는 통으로 만들기 적합한 나무를 선택한다.
나무를 고르고 잘라내는 과정은 단순히 자재를 확보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술의 맛을 결정하는 운명을 고르는 일이다. 장인은 나무의 결을 따라 손을 쓸어보며 마치 사람을 만나는 듯 이야기를 건넨다. 그의 눈빛은 늘 숲을 향해 있으며, 숲은 그에게 스승이자 동료다.
장인의 하루는 불과 물, 나무를 다루는 비밀의 기술이다
공방으로 돌아오면 본격적인 제작이 시작된다. 잘라낸 나무는 일정한 두께로 켜져 판재가 된다. 이 판재를 불에 달구어 휘어지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 기술이다. 불 앞에서 장인은 나무판을 천천히 달구고, 물을 뿌려 수분을 유지하면서 부드럽게 휘어낸다.
“불은 성질을 드러내고, 물은 그것을 다스립니다. 둘이 만나야 나무가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는 이 과정을 ‘나무와 대화하는 시간’이라고 부른다. 나무는 억지로 꺾을 수 없다. 강제로 꺾으면 금이 가고, 통으로 만들 수 없게 된다. 오직 나무의 성질을 존중하며 조금씩 설득해내야 한다.
이렇게 휘어진 나무 판들을 원형으로 세워 이어 붙이고, 대나무로 만든 고리(타가)를 단단히 조여 고정한다. 못이나 접착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오직 나무와 대나무의 힘으로 결합하는 것이다. 이 구조 덕분에 사케통은 수십 년, 때로는 백 년이 지나도 그대로 기능을 유지한다.
사케의 맛을 빚어내는 나무통에 담긴 장인의 하루
완성된 나무통은 단순히 빈 용기가 아니다. 술이 담기는 순간부터 나무는 살아 숨 쉬며 술과 대화한다. 나무의 숨구멍을 통해 미세한 공기가 드나들고, 술은 조금씩 숙성되며 풍미를 얻는다.
특히 삼나무로 만든 통은 술에 은은한 향을 더해준다. 일본인들은 이를 ‘키다치(木立ち)의 향’이라고 부른다. 그 향은 마치 숲 속에 들어선 듯 맑고 상쾌하며, 사케의 맛을 한층 깊고 부드럽게 만든다.
다나카 장인은 “사케의 맛은 양조가가 절반, 나무 통이 절반”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같은 술이라도 어떤 나무통에 담기느냐에 따라 맛은 완전히 달라진다. 전통 나무통은 단순히 술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술의 영혼을 빚는 또 하나의 장인이다.
장인의 하루는 사라져 가는 기술, 이어가야 할 불씨로 책임을 다한다
그러나 사케통 제작은 일본에서도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산업화와 효율성을 앞세운 현대 양조장에서는 스테인리스 탱크가 당연한 선택이 되었기 때문이다. 관리가 쉽고, 대량 생산에 유리하며, 비용도 절감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양조장은 여전히 전통 나무통을 고집한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나무통에서만 나올 수 있는 향과 깊은 맛 때문이다. 최근 일본 젊은 세대와 해외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나무통 사케”에 대한 관심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이는 전통을 지켜온 장인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고 있다.
다나카 장인은 말한다. “우리가 만드는 건 단순히 술통이 아닙니다. 일본 술의 혼을 담는 집을 짓는 겁니다. 이 기술이 끊기면 술맛도, 술의 영혼도 잃어버리게 될 겁니다.”
마무리
사케통 장인의 하루는 숲에서 시작해 술로 끝난다. 나무와 불, 물과 바람이 만나 하나의 술통을 만들고, 그 술통은 다시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산업화가 아무리 발달해도, 사람들은 결국 자연과 장인의 손길에서 오는 맛을 잊지 못한다.
“장인의 하루”가 기록하는 이야기는 결국 인간과 전통, 그리고 시간이 만든 유산의 기록이다. 일본의 사케통 장인은 우리에게 묻는다. 빠른 길 대신 오래도록 남는 길을 택할 수 있겠느냐고. 그 은은한 숲의 향이 담긴 술을 마시는 순간, 우리는 그 대답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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