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한 조용한 골목,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종이 냄새와 함께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흐른다. 여기서 한정우(가명, 61세) 장인은 수십 년, 때로는 수백 년 된 책을 복원한다. 찢어진 표지, 곰팡이가 핀 종이, 색이 바랜 글씨… 모두 그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난다.
그는 말한다. “책은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 시대의 목소리입니다.”
종이의 나이를 읽는 장인의 하루
복원 작업은 책의 연대와 종이 상태를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오래된 종이는 습기와 햇빛에 약하고, 잘못 다루면 쉽게 부서진다. 한 장인은 장갑을 끼고 페이지를 한 장씩 넘기며 상태를 기록한다.
한 번은 19세기 초의 한문 고서를 복원했다. 표지는 갈라지고, 내부 페이지는 가장자리가 바스러지고 있었다. 그는 같은 질감의 전통 한지로 페이지를 보강하며, 글씨가 번지지 않도록 특수 처리했다.
장인의 하루는 곰팡이와 싸우는 일이다
오래된 책의 가장 큰 적은 곰팡이다. 그는 곰팡이 제거를 위해 건조·살균 과정을 거친 후, 표면을 부드럽게 닦아낸다.
한정우 장인은 “곰팡이를 제대로 제거하지 않으면 복원해도 곧 다시 번진다”며, 재발 방지를 위해 보관 환경까지 조언한다.
사라진 글씨를 되살리는 장인의 하루
잉크가 바랜 글씨는 특수 광학 장비를 이용해 복원한다. 그는 빛의 각도와 파장을 조절해 보이지 않는 글자를 읽어내고, 이를 디지털로 복원한 뒤 인쇄해 원본에 덧붙인다.
이 과정을 거친 책은 단순히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라, 그 시대를 온전히 품은 기록물이 된다.
장인의 하루는 다시 책장 속에 담긴다
복원이 끝난 책은 주인의 서재나 도서관으로 돌아간다. 한 장인은 그 순간을 가장 좋아한다. “책이 제 자리로 돌아가야 진짜 복원이 끝나는 겁니다.”
그는 오늘도 책장 속 먼지를 털어내며, 시대와 사람을 잇는 다리를 놓고 있다.
대구, 수백 년 된 책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한정우 장인의 하루. 고서 복원의 과정과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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