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진 책갈피, 그 안에 믿음이 있다고 믿는 장인의 하루
책은 지식과 기록을 담는 물건이지만, 종교 서적은 더 깊은 의미를 갖는다. 누군가의 믿음과 기도가 담겨 있는 성경책 한 권에는 시간이 흐르며 쌓인 눈물과 손때가 함께 있다. 하지만 그런 책도 세월 앞에선 낡고 찢어지기 마련이다. 서울 서대문구의 조용한 골목길 한켠, 오래된 제본 공방에서 윤성재(가명, 66세) 장인은 오늘도 성경책을 손에 쥐고 있다. 그는 40년 이상 종교 서적 복원만을 전문으로 해온 제본 장인이다.
윤 장인은 말한다. “성경은 단순한 책이 아니에요. 사람 마음이 담긴,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믿음의 기록이죠.” 그의 하루는 찢어지고 망가진 성경책을 다시 읽을 수 있도록 만드는 일로 채워진다.
종이 하나, 줄 하나도 정성스럽게 대하는 장인의 하루
성경책은 일반 책 보다 복원 난이도가 훨씬 높다. 얇은 종이, 얇은 글씨, 종종 손글씨로 된 기록까지 섞여 있다. 윤성재 장인은 먼저 종이 상태를 확인하고, 번짐이 없는 복원용 접착제를 사용해 원형 그대로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작업은 70년대에 인쇄된 한글 성경 복원이었다. 고객은 어머니가 30년 넘게 쓰던 성경책이라며 의뢰했고, 책은 완전히 해체된 상태였다. 윤 장인은 본문 글씨가 닳지 않도록 투명 보호지로 하나하나 감싸고, 겉표지는 원래와 비슷한 갈색 가죽으로 복원했다. 완성된 책을 본 고객은 “성경이 아니라 어머니의 손길을 되찾은 것 같아요”라며 눈물을 보였다.
장인의 하루는 기계 대신 손으로 전하는 신앙의 무게가 있다
요즘은 전자 성경도 흔하지만, 윤성재 장인은 여전히 손으로 성경을 복원한다. “기계로 찍은 성경은 많지만, 손으로 만져온 성경은 하나뿐이에요.” 그래서 그는 접착제, 실, 가죽 등 모든 재료를 원서에 가장 가까운 상태로 조정해 사용한다.
특히 어떤 성경은 단어마다 밑줄, 옆에 작은 메모가 적혀 있어 복원 시 더 주의를 요한다. 그는 최대한 원본의 손때와 필기까지 보존한다. “이건 누군가의 기도예요. 지우면 안 되죠.”
그의 손끝은 종교를 넘어서, 사람의 시간과 기억을 조용히 붙잡는다.
책을 넘기며 다시 믿음을 이어가는 장인의 하루
윤성재 장인의 작업실은 외부 손님이 드나들지 않는다. 대부분 입소문으로 찾아온다. 제본대 위엔 찢어진 성경책, 교리서, 찬송가집이 수북이 쌓여 있고, 그 위엔 조용한 음악이 흐른다.
“이 일은 오래 걸리고, 돈이 많이 되지도 않지만... 그래도 누군가 다시 읽을 수 있으면 그걸로 된 겁니다.” 그는 오늘도 얇은 종이를 조심스럽게 넘기고, 본드를 묻힌 붓으로 접착한 뒤 실로 한 장 한 장 엮는다.
그리고 그 책이 다시 손에 들리는 순간, 누군가의 기도는 다시 시작된다.
서울 서대문, 낡은 성경책을 복원하며 사람들의 믿음을 되살리는 장인이 있다. 종이 위에 기도를 엮는 그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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