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공예는 시간과 손끝이 만든 예술이다. 그중에서도 ‘칠보(七寶) 공예’는 불과 금속, 유리 가루가 만나 빛과 색을 창조하는 예술로, 수백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섬세한 기법이다. 불 위에서 꽃처럼 피어나는 칠보의 색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장인의 혼이 담긴 결과물이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칠보는 점차 잊혀져가는 공예 중 하나다. 오늘은 서울 종로의 작은 공방에서 칠보의 불꽃을 지켜가는 이도현(가명) 장인의 하루를 따라가 보았다.

장인의 하루는 불과 색, 칠보의 시작이다
이 장인의 하루는 금속판을 다듬는 것으로 시작된다. 칠보의 바탕이 되는 구리판이나 은판 위에 유리 분말을 올리고, 800도 이상의 고온에서 구워내야 비로소 칠보 특유의 유려한 빛이 살아난다. 그는 “칠보는 색을 그리는 게 아니라, 불로 색을 피워내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불 속에서 유리 가루가 녹아들며 금속에 스며드는 순간,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빛이 피어난다. 그러나 이 과정은 단 한 번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는다. 열이 조금만 강하거나 약해도 유리가 깨지고 색이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장인의 손끝에서 태어나는 예술을 담은 장인의 하루
작업장에는 크고 작은 색유리 분말들이 병에 담겨 있다. 파란색은 하늘처럼, 초록색은 숲처럼, 붉은색은 불꽃처럼 빛난다. 장인은 이 분말들을 작은 붓으로 얹듯 올려놓고, 불 속으로 넣는다. 수차례의 반복 끝에 금속판 위에는 하나의 작은 우주가 탄생한다. 때로는 꽃잎, 때로는 구름, 때로는 단순한 곡선이지만, 그 속에는 자연과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칠보 장인이 된 계기를 묻자 그는 “어릴 적, 할아버지가 쓰던 칠보 장식 담뱃대를 보고 매료됐다”라고 한다. 남들은 한낱 낡은 물건이라 여겼지만, 그는 그 속에서 수십 년을 견뎌낸 색의 힘을 느꼈다고 한다. 그 후 칠보를 배우기 시작했고, 지금은 40년 넘게 그 길을 걷고 있다.
장인의 하루, 장인은 전통과 현대의 경계에서 고민한다
현대 사회에서 칠보는 시장성이 크지 않다. 값싸고 대량 생산되는 장식품에 밀려, 정교한 수작업 공예는 설 자리를 잃고 있다. 하지만 이 장인은 전통을 지키면서도 현대와 연결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다. 전통 칠보 기법으로 만든 목걸이, 반지, 장식품은 이제 젊은 세대에게도 새로운 패션 아이템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또한 그는 온라인을 통해 전 세계 공예 애호가들과 교류하며, 한국의 칠보를 알리고 있다. “칠보는 단순한 장식품이 아닙니다. 불과 금속이 만나 만들어낸 ‘시간의 결정체’죠.”
불꽃처럼 이어가야 할 유산을 담은 장인의 하루
이 장인의 바람은 단 하나다. 칠보의 불꽃이 꺼지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다. 그는 제자들을 가르치며, 더 많은 이들이 칠보의 세계에 들어오기를 바란다. “불 속에서 색이 살아나는 그 순간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절대 칠보를 잊을 수 없을 겁니다.”
칠보 공예는 작고 소박하지만, 그 속에는 수백 년을 이어온 장인의 땀과 혼이 깃들어 있다. 현대 사회가 아무리 빠르게 변하더라도, 불 위에서 꽃피는 유리빛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공예품이 아니라, 인간이 불과 색으로 남긴 영원한 흔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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