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의 하루 동네 숨은 고수 인터뷰 중 돌에 생명을 새기는 석공예 장인
강원 원주의 하늘은 맑은 날에도 돌처럼 단단하다. 산기슭을 깎아 만든 작은 작업장에 들어서면, 차가운 공기 속으로 잔 먼지가 햇살과 함께 떠다닌다. 정도윤(가명, 61세) 장인은 이 공간에서 36년째 돌을 깎는다. 그의 손에는 늘 정(釘)과 망치가 들려 있고, 발밑에는 설계도가 아닌 그날의 감각이 펼쳐진다.
그는 말한다. “돌은 느리게 듣고, 천천히 대답합니다. 서두르면 깨지고, 억지로 하면 등을 돌립니다.” 오늘도 정 장인은 돌의 표면을 손바닥으로 쓸어보고, 균열의 숨결을 손끝으로 읽는다. 그가 다루는 건 무생물이 아니라 아주 오래된 생명체다.
장인의 하루는 채석장보다 먼저, 돌의 성격을 만난다
정 장인은 오랫동안 같은 채석장에서만 돌을 가져오지 않는다. granite(화강암)의 단단함과 slate(천석)의 결, limestone(석회암)의 부드러움을 모두 경험해 두어야 의뢰의 성격에 맞게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비가 돌 표면을 적시면, 결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는 돌을 고를 때 손바닥과 귓불을 쓴다. 손바닥으로 미세한 요철을 확인하고, 귓불에 가져다 대고 톡 두드려 울림을 듣는다. “둔탁하면 깊이가 부족하고, 맑으면 일이 잘 풀립니다.” 어느 날, 마을 입구에 세울 표지석 의뢰가 들어왔다. 마을 사람들은 ‘새로움’보다 ‘이어감’을 원했다. 정 장인은 채석장 한쪽에 묵혀 있던, 표면에 이끼의 자국이 흐릿하게 남은 돌을 선택했다. “새 돌의 흠잡을 데 없는 표면이 오히려 이 마을의 시간을 지울 수 있습니다.”
장인의 하루엔 거친 바깥에서 안쪽으로, 형태가 태어나는 순서가 있다
돌을 깎는 순서는 바깥에서 안쪽으로, 큰 형태에서 작은 디테일로 흐른다. 정 장인은 먼저 점·선·면을 정으로 표시한다. 그런 다음, 망치로 리듬을 만들어가며 과감하게 쳐낸다. 튀어나온 면을 과감히 떨어뜨려야 숨은 곡선이 드러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건 ‘멈춤’이다. 그는 하루에 정해진 양만큼만 돌을 친다. “사람의 성질이 돌에 옮습니다. 욕심이 앞서면 균열을 놓쳐요.” 그는 의뢰받은 ‘노인의 얼굴’ 조각에서 눈 주위를 마지막까지 남겨두었다. 입술의 억양과 광대의 볼륨이 충분히 살아난 뒤에야 눈을 팠다. 눈은 생명이고, 생명은 서둘러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첫눈이 온 날, 그는 마침내 눈동자를 새겼다. 돌 표면에 얇게 깔린 눈이 눈물처럼 비쳤다. 그는 작업을 멈추고 한참을 서 있었다. “이 돌은 오늘 태어났습니다.”
글자와 무늬, 기록이 되는 표면들이 장인의 하루이다
석공예의 하이라이트는 완성의 가까운 시점에 새기는 글자와 무늬다. 정 장인은 표지석에 마을 이름을 새길 때, 폰트를 쓰지 않는다. 그는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의 필체를 모은다. “마을의 이름은 마을의 손글씨여야죠.” 그는 어르신들이 쓴 세 글자의 공통된 획을 찾아 조합하고, 획의 시작과 끝을 해당 돌결에 맞춰 변형한다. 글자를 얕게 새기면 비에 닳고, 너무 깊게 새기면 그림자가 과해 위압적이 된다. 정 장인은 손가락 한 마디보다 조금 얕게 새긴다. 한 번은 사고로 아들을 떠나보낸 가족이 추모석을 의뢰했다. 가족은 “말은 하고 싶은데, 말이 너무 무거워요”라고 했다. 정 장인은 돌의 뒷면에 물결무늬를 아주 얕게 새기고, 앞면에는 딱 다섯 글자만 새겼다. ‘햇빛이 닿았다’. 제막식에서 가족은 조용히 돌을 안고 울었다. 정 장인은 돌을 쓰다듬었다. “말이 무거우면, 돌이 가볍게 받칠 수도 있습니다.”
장인의 하루는 다듬음과 남김, 영원을 향한 균형들이다
마무리는 폴리싱만이 아니다. 그는 일부러 ‘도끼 자국’을 남겨둔다. 너무 매끈한 표면은 시간의 그립을 잃는다. 비와 바람이 붙잡을 자리를 줘야 돌이 자연스레 나이 든다. 그는 “완벽은 완성의 이름이 아니라, 생명의 반대말”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늘 한 군데를 빈자리로 남긴다. 누군가의 손때가 닿고, 이끼가 자리 잡을 자리를 위해서다. 작업장을 찾는 청년들에게 그는 도구를 먼저 쥐여주지 않는다. 돌 앞에 앉아 한 시간을 보내게 한다. “보고, 만지고,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친해져요.” 해 질 녘, 산 그늘이 작업장을 덮으면 정 장인은 도구를 정리하고 조용히 물을 뿌려 먼지를 가라앉힌다. 방금까지 거칠던 돌 표면이 물에 젖어 깊은 회색을 띤다. 오늘 생긴 상처와 오늘 남긴 결이 서로를 알아보는 순간이다. 정 장인은 돌덩이 옆에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잘 늙어라.” 그의 하루는 느린 속도로 전진하며, 돌처럼 오래 남는다.
원주 석공예 장인 정도윤의 하루를 따라가며 돌 선택, 형태 조형, 글자 각인, 마무리의 미학까지 ‘느림과 남김’으로 시간을 새기는 석공의 철학을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