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의 하루 동네 숨은 고수 인터뷰 중 한 땀 한 땀, 맞춤 구두를 만드는 수제 가죽구두 장인
서울 충무로 뒷골목. 화려한 상점가 사이에 자리 잡은 허름한 간판 하나가 눈길을 끈다. ‘○○ 수제 구두방’. 작은 철제문을 열고 들어가면 진한 가죽 냄새와 광택제 향이 뒤섞인 공방 특유의 공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구두가 가지런히 놓인 진열대 뒤편에는 오래된 작업대가 자리 잡고 있고, 그 위에는 송곳, 바늘, 망치, 실이 정리돼 있다. 이곳의 주인공은 72세의 김상호(가명) 장인. 그는 반세기 넘게 오직 수제 가죽구두 하나만을 만들며 살아온 장인이다. “구두는 단순히 발을 보호하는 게 아닙니다. 사람의 인생을 함께 걷는 친구 같은 존재죠.” 그의 말에서 이미 구두에 대한 애정과 철학이 묻어난다.
구두 장인의 아침, 가죽을 고르는 순간 장인의 하루는 시작된다
김 장인의 하루는 새벽 일찍, 시장에서 가죽을 살펴보는 일로 시작된다. 그는 수십 년간 손끝으로 가죽의 질감을 구분해 왔다. 두께, 탄력, 결 하나까지 세밀하게 살펴본다. “구두의 품질은 좋은 가죽에서 70%가 결정됩니다. 작은 흠집이나 무늬의 불균형도 허용할 수 없지요.”
그는 손님마다 다른 발 모양과 취향을 고려해 가죽을 선택한다. 넓적한 발에는 부드럽고 신축성 있는 가죽을, 오래 걷는 직장인에게는 단단하면서도 숨이 잘 통하는 가죽을 쓴다. 이런 과정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신발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맞춤의 가치였다.
장인의 하루 한 땀의 시간, 손바느질로 이어지는 길로 향한다
가죽이 준비되면 장인은 밑창과 윗가죽을 맞추는 작업에 들어간다. 그는 아직도 손바느질을 고집한다. 바늘에 굵은 왁스 실을 꿰어 한 땀 한 땀 꿰매 내려가는 과정은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견고함과 유연함이 동시에 살아난다.
“기계는 빨리 만들지만, 마음을 담을 수 없어요. 손바느질은 제 숨결이 그대로 구두에 새겨집니다.”
작업대 옆에는 구두의 패턴 종이가 수십 장 놓여 있었다. 고객마다 발 모양이 다르기에, 장인은 먼저 발 치수를 정밀하게 재고, 그에 맞춰 패턴을 만든다. 그는 종종 농담처럼 말한다. “제 손님들은 구두가 아니라, 자기 발을 제게 맡기는 거예요.” 이 농담 속에는 장인의 자부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고객의 이야기를 담는 구두가 장인의 하루이다
그의 공방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구두를 맞추러 온다. 결혼식을 앞둔 예비 신랑, 오랜만에 승진을 맞이한 직장인, 무대에 오르는 성악가까지. 김 장인은 구두를 만들면서 늘 고객의 사연을 마음에 새긴다. 그래서 그의 구두는 단순한 신발이 아니라 삶의 중요한 순간을 함께하는 동반자가 된다.
그는 잊지 못할 고객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20년 전, 한 청년이 면접을 앞두고 구두를 맞췄다. 그 청년은 “제발 이 구두를 신고 당당히 걸어 들어가고 싶다”라고 했다. 몇 달 뒤, 그는 다시 찾아와 합격 소식을 전하며 감사 인사를 남겼다. 세월이 흘러 그 청년은 이제 중견 기업의 임원이 되어, 여전히 장인의 구두만을 찾는다. “그런 순간이 제게는 최고의 보람입니다.” 김 장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장인의 하루는 전통을 잇는 발걸음으로 이어진다
세상은 점점 빠르고 간편한 것을 원한다. 대량생산, 저렴한 가격, 온라인 주문이 일상이 됐다. 하지만 김 장인은 여전히 손바느질과 맞춤 제작을 고집한다. 그는 말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제 구두를 신은 사람들이 편안하게 하루를 보내길 바랍니다. 그것이 장인의 역할입니다.”
최근에는 젊은 제자 한두 명이 그의 공방을 찾았다. 그는 자신의 기술을 이어주며 ‘장인의 길은 함께 걷는 것’이라고 말한다. 빛바랜 공방의 불빛 아래, 그의 손끝에서 태어난 구두는 한 사람의 인생을 묵묵히 지탱하며 앞으로도 계속 길을 걸어갈 것이다.
서울 충무로, 50년째 수제 가죽구두를 만드는 김상호 장인. 한 땀 한 땀 손바느질로 고객의 인생을 함께 걷는 맞춤 구두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