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의 하루 동네 숨은 고수 인터뷰 중 손끝에서 피어나는 종이꽃, 종이 공예 장인
서울 은평구의 한 오래된 작업실. 창문 너머로는 햇살이 부드럽게 들어오고, 실내에는 다채로운 색감의 종이들이 층층이 쌓여 있다. 종이에서 향이 날 리 없지만, 이곳에 들어서면 은은한 꽃 향이 느껴지는 듯하다. 이소연(가명, 48세) 장인은 20년 넘게 종이로 꽃과 식물을 만들어왔다. 결혼식 부케, 병원 환자들을 위한 꽃다발, 기념일 선물까지 모두 그녀의 손끝에서 태어난다.
그녀는 말한다. “진짜 꽃은 시간이 지나면 시들지만, 종이꽃은 기억 속에서 영원히 피어있죠.”
종이의 결을 읽는 장인의 하루
종이꽃 제작은 종이를 고르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종이의 두께, 질감, 색이 꽃의 생김새와 질감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이 장인은 같은 장미라도 계절에 따라 종이 색을 다르게 선택한다. 봄 장미는 연분홍빛, 가을 장미는 짙은 적색으로 표현한다.
어느 날, 한 고객이 병상에 있는 어머니를 위해 평생 시들지 않는 꽃다발을 의뢰했다. 이 장인은 3일 동안 종이를 하나하나 물들이고, 잎맥을 새기며 섬세하게 작업했다. 완성된 꽃다발을 본 어머니는 눈을 감고 향이 있는 듯 꽃을 쓰다듬었다.
장인의 하루엔 꽃잎을 빚는 손길이 있다
꽃잎을 만드는 과정은 마치 조각과 같다. 종이를 자르고, 곡선을 만들기 위해 열을 가하고, 꽃잎 끝을 살짝 말아 자연스러운 형태를 만든다. 그녀는 “종이꽃은 손의 감각으로 만드는 조형물”이라며, 매 꽃잎마다 생명을 불어넣는다고 말했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작업은 백합이다. 백합 특유의 곡선을 살리기 위해 종이의 모서리를 여러 번 말아주고, 빛에 따라 색이 변하는 그라데이션 효과를 손수 그려 넣는다.
기억 속 꽃을 되살리는 장인의 하루
종이꽃 공예의 가장 큰 매력은 ‘추억을 재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떤 고객은 30년 전,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받은 꽃다발을 그대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이 장인은 당시의 사진 속 꽃 색과 형태를 참고하며 2주 동안 작업에 몰두했다. 완성품을 받은 고객은 “이건 단순한 종이꽃이 아니라, 제 청춘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 순간, 종이꽃이 단순한 장식품을 넘어 사람들의 시간을 품을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장인의 하루는 사계절 내내 피어나는 꽃이다
이소연 장인의 작업실에는 계절이 없다. 봄에는 벚꽃, 여름에는 해바라기, 가을에는 국화, 겨울에는 포인세티아가 종이로 피어난다. 그녀의 손끝에서 태어난 꽃은 먼 나라로, 혹은 오랜 시간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녀는 말한다. “제 꽃은 시들지 않아요. 그래서 누군가의 마음속에 오래 남을 수 있는 거죠.”
서울 은평구, 종이로 사계절의 꽃을 피우는 이소연 장인의 하루. 추억을 재현하는 종이꽃 공예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