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의 하루

장인의 하루 동네 숨은 고수 인터뷰 중 오래된 책을 손으로 복원하는 고서 복원 장인

goomio1 2025. 8. 4. 07:38

책은 시간이 지나면 노랗게 변색되고, 접힌 모서리는 찢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낡은 책 한 권이 삶을 바꿨던 결정적 순간이기도 하다. 서울 성북구 성균관대 근처의 한 복합문화공간 지하, 종이 냄새가 은은하게 퍼지는 책 공방에서 장지은(가명, 61세) 장인은 고서를 복원한다. 그녀는 국립도서관에서 근무한 뒤 개인 공방을 운영하며 30년 이상 고서 복원에 전념해 온 책 복원 전문가다.

장 장인은 말한다. “책도 사람이랑 같아요. 오래되면 아프고 찢어지고, 그래서 손길이 필요해요.”

 

오래된 책을 손으로 복원하는 고서 복원 장인의 하루

장인의 하루는 종이의 결을 기억하는 손이 있다

책 복원은 단순한 접착이나 제본이 아니다. 찢어진 페이지, 삭은 책 등, 떨어져 나간 표지를 되살리는 일이다. 장 장인은 먼저 종이의 성질부터 파악한다. 일제강점기 이전의 종이는 한지, 그 이후는 펄프, 그리고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산성이 강해져 쉽게 부식된다.

기억에 남는 작업은 1950년대에 인쇄된 국어 교과서였다. 고객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초등학생 시절 쓰던 책을 복원하고 싶다며 찾아왔다. 장 장인은 원래 종이와 가장 흡사한 한지를 고르고, 변색된 부분은 염색하여 자연스럽게 복원했다. 책들은 새로운 실로 다시 꿰맸고, 찢어진 페이지는 겹겹이 얇은 종이로 보강했다.

 

복원은 ‘새것 만들기’가 아니라 ‘기억 지키기’이다 이것이 장인의 하루이다

장지은 장인은 절대 책을 새 책처럼 만들지 않는다. “이 책을 쓴 사람, 들고 읽은 사람, 넘긴 손의 흔적까지 지켜야 진짜 복원이에요.” 그녀는 인위적인 광택이나 표지 교체를 피하고, 원래의 질감과 톤을 유지하며 작업한다.

책 등을 교체할 땐, 가장 유사한 실 색상과 재질을 고르기 위해 직접 염색도 한다. 오래된 접착제는 인체에 유해하므로, 천연 아교와 식물성 풀을 배합해 사용한다. “복원은 재료보다 시간과 기다림이 더 중요해요.”

 

장인의 하루엔 종이 안에 담긴 감정까지 복원하다

책 속에는 감정이 있다. 밑줄, 메모, 낙서조차 복원의 대상이다. 장 장인은 절대 낙서를 지우지 않는다. 누군가 책을 읽으며 적은 그 흔적이야말로 책의 삶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한 고객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읽던 정치평론집을 복원해 달라며 맡겼다. 낙서 투성이었고, 커피 자국도 선명했다. 그녀는 낙서를 남기되, 번진 잉크는 고정액으로 보존하고, 눅눅해진 종이는 탈산 처리하여 안정화시켰다. 고객은 복원된 책을 받고 “아버지와 다시 대화하는 느낌이었어요”라고 했다.

 

책을 다시 손에 쥐게 만드는 장인의 하루

장지은 장인의 책장은 수백 권의 책으로 가득하다. 어떤 책은 해방 후 출판본이고, 어떤 책은 손때 묻은 편지 묶음이다. 그녀는 오늘도 한 장 한 장을 살펴보고, 찢어진 부분을 메우고, 다시 꿰맨다.

“이 책을 다시 읽게 되는 날이 오면, 저는 제 역할을 다한 거예요.” 그녀의 하루는 그렇게 손끝으로 기억을 이어주는 시간이다.


서울 성북구, 오래된 책을 손으로 복원하는 장인이 있다. 찢어진 종이 속 추억까지 복원하는 장지은 장인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