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의 하루인 동네 숨은 고수 인터뷰 중 종이 연을 손으로 만드는 연 제작 장인
하늘을 그리는 장인의 하루, 땅에서 바람을 기다리다
연을 날리던 시절이 있었다.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없던 어린 시절. 겨울바람이 불면 동네 골목과 논두렁엔 알록달록한 연이 하늘을 수놓았고, 그 끈을 잡은 아이들의 눈엔 설렘이 가득했다. 그러나 이제 연은 더 이상 아이들의 놀이가 아니다. 사라진 전통이자, 누군가의 손끝에서만 간신히 이어지는 기술이다.
서울 강서구 방화동의 한 오래된 한옥 작업실에서 노영만(가명, 73세) 장인은 오늘도 종이와 대나무를 손에 쥐고 연을 만들고 있다. 그는 45년 넘게 전통 연 제작에 삶을 바쳐온 장인이다.
노 장인은 말한다. “하늘에 연을 띄우는 건 바람만으로는 안 돼요. 땅에서 만들어야 떠요. 손끝에서 바람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의 하루는 그렇게 땅에서 시작해 하늘로 이어진다.
연은 종이보다 먼저 사람의 꿈을 실는 장인의 하루
전통 연은 단순한 종이 장난감이 아니다. ‘방패연’, ‘가오리연’, ‘홍두연’, ‘꼬리연’ 등 수십 가지 종류가 있고, 각 연마다 의미와 쓰임이 다르다. 예전에는 액운을 날려 보내거나 아이의 건강을 기원하며 연을 만들었다.
노영만 장인은 연을 만들 때 먼저 대나무를 골라 깎고, 가마솥에 쪄서 휘는 방향을 바로잡는다. 그다음 한지를 펼쳐 붙이고, 연날개와 끈을 조정해 바람의 균형을 맞춘다. 특히 방패연은 가운데 구멍을 뚫어야 하며, 종이의 탄력과 배합이 중요하다.
기억에 남는 작업으로는, 폐교된 초등학교의 마지막 교정 위로 100개의 연을 띄운 일이 있다. 지역 주민들이 연을 날리며 과거의 추억을 떠올렸고, 그 연들은 하늘 위에서 다시 시간을 새겼다. “그날 바람은 참 좋았어요. 사람들 마음이 가벼웠거든요.”
손으로 바람을 읽는 기술을 가진 장인의 하루
요즘은 기계로 만든 비닐 연이 대부분이지만, 노 장인은 지금도 모든 연을 손으로 만든다. “기계는 모양은 맞춰도, 바람은 못 맞춰요.” 그는 연의 무게중심, 꼬리 길이, 실의 굵기까지 손으로 조절한다.
한 번은 외국 연 박람회에서 한국 전통 연을 전시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는 오직 한지와 대나무만으로 만든 연을 들고 일본, 베트남, 프랑스 전시회에 참여했다. 그곳에서 아이들이 직접 연을 날려보는 체험을 하며 큰 호응을 얻었고, 몇몇 외국인 관람객은 한국 연을 구매해 갔다.
“하늘에 떠 있는 시간은 짧지만, 만드는 데는 며칠이 걸려요. 그 차이가 전통의 무게죠.”
장인의 하루가 끝나고 연이 하늘을 가를 때, 사람들의 얼굴도 환해진다
노 장인의 작업실에는 완성된 연들 이 천장과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붉은색 방패연, 푸른 가오리연, 십장생 문양이 그려진 연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작업대에는 대나무 조각과 말라가는 종이들이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아이들도 연을 좋아해요. 하늘에 뭔가 띄운다는 건 나이와 상관없는 기쁨이거든요.” 그는 동네 아이들에게 연 날리기 체험을 가르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웃으며 연을 날리는 모습을 보며, 그는 오늘도 또 한 장의 종이에 바람을 담는다.
그의 하루는 그렇게, 하늘과 가까워지는 종이 한 장에서 시작된다.
장인의 하루가 시작되는 서울 강서구, 종이 연을 손으로 만들어 하늘에 띄우는 장인이 있다. 손끝에서 바람을 만든다는 그의 하루를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