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의 하루

장인의 하루인 동네 숨은 고수 인터뷰 중 골목 속 은행나무로 악기를 만드는 목공 장인

goomio1 2025. 7. 11. 06:40

장인의 하루엔 나무 한 그루가 사람의 소리를 품는다

도시의 골목길을 걷다 보면 오래된 은행나무가 보인다. 노란 잎이 떨어지고 가지는 메말라가지만, 그 안에는 아직 따뜻한 숨결이 남아 있다. 서울 강북구의 조용한 주택가, 오래된 공방에서 유도현(가명, 63세) 씨는 오늘도 나무를 만지며 악기를 만든다. 그는 35년 넘게 버려진 은행나무와 느티나무로 소규모 악기를 만드는 장인이다.

유 장인은 공장 제품보다 사람 손의 결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오래된 골목에서 나무를 수집하고, 그것을 깎아 작은 북이나 우쿨렐레, 카혼 같은 악기로 탄생시킨다. “나무는 죽어도 소리를 남겨요. 사람도 그렇죠.” 그는 나무와 사람의 닮은 점을 이야기하며 오늘도 망치 대신 대패를 든다.

 

장인의 하루는 은행나무 한 조각에 담긴 감정이다

유 장인이 사용하는 나무는 모두 버려진 것이다. 가지치기 후 잘려나간 은행나무, 공원에 방치된 오래된 나무 기둥. 그는 그 나무들을 손으로 두드려보고, 결을 살핀 후 악기 재료로 쓴다. “겉은 거칠어도 속은 아직 살아 있어요. 사람도 그렇잖아요.”

작업 과정은 길고 섬세하다. 나무를 자르고, 건조하고, 표면을 다듬고, 마지막으로 울림통을 만들기까지 최소 3개월이 걸린다. 유 장인은 한 번에 하나의 악기만 만든다. 기억에 남는 작업은 버려진 은행나무로 만든 우쿨렐레였다. 의뢰인은 결혼 10주년을 기념해 부인에게 선물할 악기를 주문했는데, 유 장인은 의뢰인 부부의 이야기를 듣고 악기의 울림을 조금 부드럽게 조정했다. 완성된 우쿨렐레는 일반 악기보다 낮고 따뜻한 소리를 냈고, 그 부부는 “이 악기엔 우리의 이야기가 담긴 것 같다”라고 말했다.

 

나무도 사람처럼 마음이 있다고 말하는 장인의 하루

유 장인은 악기 제작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나무의 마음을 읽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무조건 예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나무가 가고 싶은 방향을 존중해야 해요”라고 강조한다. 특히 은행나무는 결이 복잡하고 울림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그는 주로 지역 커뮤니티 센터와 협업해 아이들에게 악기 만들기 체험도 제공한다. 특히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손끝으로 나무를 만지며 악기의 울림을 느낄 때, 그는 더없이 보람을 느낀다. 한 번은 청각장애를 가진 아이가 카혼을 만드는 수업에 참여했다. 아이는 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손바닥으로 북의 떨림을 느끼며 “이렇게 울리는구나”라고 웃었다. 유 장인은 “나무는 소리뿐만 아니라 감각도 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골목 속 은행나무로 악기를 만드는 목공 장인의 하루

장인의 하루는 버려진 것에 다시 생명을 넣는다

지금도 유도현 장인의 공방에는 크고 작은 나무 조각들이 쌓여 있다. 그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다듬으며 말없이 하루를 보낸다. 요즘 같은 시대엔 악기도 기계로 대량 생산되지만, 그는 여전히 손으로만 만든다. “기계는 빠르고 정확하지만, 사람 마음까지는 담지 못해요.”

그가 만든 악기들은 지역 학교, 카페, 그리고 개인 가정으로 퍼져 나간다. 누군가는 그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누군가는 아이를 재우며 두드린다. 유 장인은 그 모습을 상상하며 오늘도 손끝으로 나무를 다듬는다. 은행나무 한 조각에서 시작된 소리가 골목을 넘어 사람들의 일상으로 이어진다. 그것이 그가 목공을 멈추지 않는 이유다.


장인의 하루엔 버려진 은행나무로 악기를 만드는 장인. 나무의 울림으로 사람들의 기억과 감정을 다시 깨우는 그의 하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