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의 하루인 동네 숨은 고수 인터뷰 중 오래된 사진을 복원하는 기억 수선 장인
빛바랜 사진 속에 장인의 하루가 담긴 시간의 온도
사진은 시간이 멈춘 순간을 담는 매개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사진도 빛이 바래고, 색이 지워지고, 종이가 찢어진다. 서울 종로구의 작은 사진관 한쪽 방에서, 이런 오래된 사진을 다시 살려내는 장인이 있다. 최정우(가명, 62세) 씨. 그는 30년 넘게 사진 복원 전문 작업만 해온 ‘기억 수선 장인’이다.
그는 말한다. “사진은 색보다 마음을 복원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가져오는 사진 대부분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다. 돌아가신 부모의 젊은 시절, 유일하게 남은 가족사진, 혹은 어릴 적 잃어버린 형과 함께 찍은 한 장의 흑백사진. 그의 손은 단순한 색 보정보다 훨씬 더 많은 감정을 다룬다.
색을 되살리는 건 기술이 아니라 태도라고 말하는 장인의 하루
사진 복원은 스캐너와 컴퓨터가 있어도 간단하지 않다. 최 장인은 원본 사진을 먼저 손으로 만져본다. 종이의 결, 습기, 구겨진 자국을 확인하고, 어떤 톤이 필요한지 눈으로 파악한다. 이후 고해상도 스캔을 한 뒤, 색을 조정하고, 찢어진 부분은 디지털 붓으로 하나씩 그려 넣는다. “작은 주름 하나에도 이야기가 있으니까 함부로 지우면 안 돼요.”
그는 최대한 원본의 감정과 구도를 해치지 않기 위해, 고객과 대화를 오래 나눈다. “당신이 이 사진을 볼 때 어떤 느낌이 나야 하나요?” 이 질문이 작업의 출발점이다. 실제로 한 번은 6.25 전쟁 직후 가족사진을 복원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색이 거의 지워졌고, 사진 절반이 찢어져 있었다. 그는 사진 속 표정 하나하나를 확대해 가며 복원했고, 손주에게 전달된 사진을 본 의뢰인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이제야 우리 가족이 다시 한 자리에 모인 것 같아요.”
기억을 다시 연결하는 일이 장인의 하루이다
사진 복원에는 단순한 보정 이상의 가치가 있다. 그는 사진을 통해 ‘가족이라는 시간’을 다시 엮는다고 말한다. 누군가에게는 잃어버린 과거, 누군가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인연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사진을 받을 때 그 사람의 목소리, 말투, 자세까지 기억하려고 애쓴다. “그 사람의 태도가 사진에 담겨 있거든요.”
기억에 남는 고객 중엔, 입양 후 처음으로 생모를 만난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어릴 적 생모와 찍은 흑백 사진을 단 한 장 갖고 있었다. 그는 사진 속 흐릿한 얼굴을 또렷하게 만들고, 배경에 흐려진 나무 그림자를 살려냈다. 사진을 받은 여성이 말하길, “이 한 장이 저를 다시 연결해줬어요.” 그는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사진 복원이라는 일이 ‘기술’이 아니라 ‘감정의 작업’ 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장인의 하루는 사라지는 종이에 남기는 영원함이다
요즘은 디지털 사진이 대세다. 사진은 쉽게 찍고, 쉽게 지운다. 하지만 최정우 장인은 여전히 종이 사진을 복원한다. 이유를 묻자 그는 말했다. “디지털은 흔들리면 다시 찍으면 되지만, 종이는 다시 찍을 수 없어요. 그래서 더 소중해요.”
그는 복원한 사진을 출력할 때, 종이 재질도 고객의 감성에 맞춰 선택한다. 어떤 이는 광택지를, 어떤 이는 바랜 듯한 무광지를 원한다. 그는 그 선택이 바로 ‘기억의 촉감’이라고 말한다. 지금도 그의 책상 위엔 낡고 찢어진 사진들이 놓여 있고, 화면 속에는 그 사진들의 기억을 다시 채우는 색들이 조용히 번지고 있다. 그는 오늘도, 사라지는 기억에 다시 색을 입힌다.
빛바랜 사진 속 기억을 되살리는 장인의 하루가 있다. 그는 색을 복원하며 가족의 이야기와 감정을 다시 연결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