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의 하루인 동네 숨은 고수 인터뷰 중 망치 대신 붓을 든 골목길 페인트 장인
색을 칠하는 손이 도시의 분위기를 바꾸는 장인의 하루
도시를 바꾸는 건 거대한 개발이나 고층 건물만이 아니다. 낡고 빛바랜 골목에 새로운 색이 입혀질 때, 사람들은 다시 그 골목을 걷고 싶어 한다. 서울 도봉구의 오래된 주택가 골목. 그곳에선 누군가가 낡은 벽 위에 색을 칠하고 있다. 바로 김유석(가명, 58세) 씨. 그는 25년 넘게 골목길 벽화와 외벽 도색만을 해온 페인트 장인이다.
김 장인의 하루는 색으로 시작하고, 색으로 끝난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공간의 기분을 바꾸는 사람이에요.” 그는 붓을 들기 전, 먼저 그 골목에 서서 햇빛과 그림자의 각도를 본다. 어떤 색이 이 공간과 어울릴지, 어떤 선이 사람들의 시선을 편하게 만들지 고민하는 시간이다. 그렇게, 아무도 보지 않는 새벽부터 그의 색은 골목을 물들인다.
장인의 하루 속 페인트칠은 기술이 아니라 감각이다
페인트 작업은 단순히 칠하는 일이 아니다. 김 장인은 벽의 상태를 먼저 만져보고, 수분이 많은 벽은 하루 이상 건조시킨다. 그 후 바탕 프라이머를 직접 만들어 칠하고, 붓과 롤러 대신 작은 스펀지를 쓰기도 한다. “벽이 거칠면 붓도 아파요. 도구를 바꾸는 건 벽에 맞춰 가는 거예요.”
그는 주민들에게 무조건 묻는다. “여기 색깔 뭐가 좋을까요?” 아이들이 많은 동네엔 파스텔톤, 노인들이 많은 곳은 흙빛 계열. 그는 ‘사람이 많은 곳은 색이 많아야 하고, 사람이 적은 곳은 색이 따뜻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한 번은 40년 된 다세대 주택 벽을 칠하던 중, 할머니가 “하얀색은 외롭다”고 말하자 그는 핑크와 연갈색을 섞어 부드러운 톤으로 다시 칠했다. 완성된 벽을 본 주민은 말했다. “이제 이 골목이 집 같아요.” 그 말 한마디가 그에게는 가장 큰 보람이다.
장인의 하루 하루 골목을 살리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 정성
김 장인은 벽화나 외벽 작업을 돈벌이로 생각하지 않는다. “페인트는 12년 지나면 벗겨지죠. 그래서 더 정성스럽게 해야 해요.” 그는 색을 오래 머물게 하기 위해, 항상 34번 덧칠한다. 비용보다 중요한 건, 그 색이 누군가의 시야 속에 오래 남는 일이라고 말한다.
기억에 남는 골목은 노인 인구가 많은 동네였다. 외출을 꺼리던 어르신들을 위해 ‘걷고 싶은 골목’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는 일주일 동안 그 동네에 머물며 노인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옷 색, 벽을 바라보는 시선 등을 분석했다. 결국 은은한 청회색과 황토색을 중심으로 벽과 계단을 칠했고, 이젠 그 골목은 노인들 산책 코스로 불린다.
색 하나가 바꾸는 삶의 분위기 그것이 장인의 하루들이다
김 장인은 말한다. “도시는 점점 회색이 많아지잖아요. 나는 그 사이에 사람의 감정을 넣고 싶어요.” 그래서 그는 지금도 하루에 하나의 골목만 맡는다. 아침엔 색 조합을 테스트하고, 낮엔 햇빛 각도에 따라 벽을 칠하고, 해질 무렵엔 전체 색을 조정한다.
그의 붓질은 빠르지 않다. 하지만 섬세하고 따뜻하다. 붓끝에서 번진 색은 골목에 작은 기분을 남긴다. “어디에도 이름은 안 남아요. 대신 누군가가 그 골목을 다시 걷고 싶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그의 하루는 그렇게 조용히, 하지만 분명하게 골목의 표정을 바꿔간다.
서울의 골목, 장인의 하루는 시작된다. 색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밝히는 페인트 장인이 있다. 그는 붓 하나로 공간의 감정을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