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의 하루

장인의 하루인 동네 숨은 고수 인터뷰중 낡은 LP판을 되살리는 음악 수복 장인

goomio1 2025. 7. 9. 12:00

장인의 하루인 멈춘 음악 속에 숨겨진 이야기

음악은 시대를 건너는 기억이다. 특히 아날로그 LP판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시간이 지나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LP판은 긁히고, 먼지가 쌓이고, 재생되지 않는 소음으로 변해버린다. 그런 고장 난 음악을 다시 울리게 만드는 이가 있다. 서울 종로의 한 오래된 지하상가, 그곳에서 최한규(가명, 64세) 씨는 낡은 턴테이블과 LP판을 닦고 있다.

그는 33년째 LP판 복원만을 해온 음악 수복 장인이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기스난 판 위에서 그는 소리를 찾는다. “음악은 지워지지 않아요. 다만 소리가 길을 잃었을 뿐이에요.” 그는 먼지를 걷고, 홈을 다시 정리하고, 침을 교체하며 다시 음악이 돌아가도록 한다. 그렇게, 누군가의 추억이 다시 돌아온다.

 

낡은 LP판을 되살리는 음악 수복 장인의 하루

한 장의 판에 깃든 시간의 흔적은 장인의 하루들이다

최 장인은 하루에 많아야 두세 장의 LP만을 손본다. 그것도 손으로 직접 닦고, 현미경으로 홈을 확인하고, 음질을 일일이 체크하는 방식으로. “디지털 복원은 빠르지만, 나는 아날로그의 결을 살리고 싶어요.”

가장 보람 있었던 복원은 1970년대 가요 LP였다. 고객은 어머니가 생전에 가장 좋아하던 노래라고 했다. 그러나 판은 휘어 있고, 표면엔 커피 자국까지 남아 있었다. 그는 판을 적절한 온도로 데워 휨을 잡고, 정밀한 전용 세척액으로 표면을 수차례 닦았다. 마지막으로 바늘의 압력을 조정해 판에 손상을 주지 않고 재생되도록 했다. 노래가 다시 흘러나왔을 때, 고객은 말없이 눈을 감았다. “어머니 방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장인의 하루의 소리는 기억보다 오래 남는다

그는 단순히 LP판을 고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기억을 되살린다고 말한다. 어떤 이에게는 첫사랑과 들었던 재즈, 또 다른 누군가에겐 군 복무 시절 밤마다 들었던 클래식. 그는 손님들에게 음반의 사연을 먼저 듣고 작업에 들어간다.

하루는 한 중년 남성이 아버지의 유품이라는 LP판 한 장을 들고 왔다. 그 곡은 푸치니의 오페라였고, 음질은 심각하게 훼손돼 있었다. 하지만 최 장인은 음질 복원 소프트웨어는 쓰지 않았다. 오히려 직접 턴테이블의 속도를 낮추고, 홈에 맞는 침을 찾아가며 3일간 조율했다. 그리고 아주 작고 낮은 볼륨으로, 그 음반은 다시 울렸다. 그는 말했다. “좋은 소리는 크지 않아요. 오래 남는 소리가 좋은 소리죠.”

 

LP는 돌아가지만, 감정은 정지되지 않는 장인의 하루

요즘은 대부분 디지털 음원을 듣는다. 그러나 여전히 LP를 복원해 달라는 요청이 이어진다. 그중엔 직접 재생하지 않더라도, 단지 ‘소유하고 싶다’는 사람도 많다. “그 판을 보고, 냄새를 맡고, 돌리는 동작 자체가 그 사람의 과거를 깨우거든요.”

최 장인은 디지털의 편리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에게 중요한 건 ‘느린 감정의 흐름’이다. 그래서 그는 복원된 LP를 고객에게 전달할 때, 앨범 커버를 다시 복사하고, 바늘을 교체한 기록까지 메모해 함께 준다. 그 모든 게 한 장의 음악을 온전히 되돌려주는 과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의 좁은 작업실에는 조용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그 옆에선 먼지 낀 판이 다시 돌아간다. 바늘이 닿는 그 순간, 소리가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그 속엔 분명, 누군가의 오래된 감정이 살아 숨 쉰다.


서울의 한 지하 LP 복원실. 잊힌 판 위에서 소리를 다시 찾는 장인이 있다. 오늘도 그는 음악보다 오래 남는 감정을 복원한다.